북한이탈주민의 사회통합과
건강한 자립을 방해하는 요소
강동완 동아대 교수
북한이탈주민의 사회통합과
건강한 자립을 방해하는 요소
강동완 동아대 교수
2022년 6월 현재 국내 입국 북한이탈주민은 3만 4천여 명에 이른다. 우리 사회에서 그들은 ‘먼저 온 미래’, ‘통일의 마중물’로 불린다. 국내 입국한 탈북민의 안정적인 정착은 향후 통일시대를 가늠하는 중요한 시험대가 되지 않을까? 남북한 통일의 가치는 무엇보다 사람이기 때문이다. 각각 다른 체제에서 살아온 남북한 출신 사람들이 적대감을 해소하고 하나로 통합하기 위한 출발점은 서로에 대한 공감적 이해다. 남한에 무사히 입국했다고 해서 남한 생활 자체가 곧바로 행복의 여정이 되는 건 결코 아니다. 목숨을 건 탈북과정, 여성의 경우 중국에서의 인신매매에 따른 트라우마, 두고 온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낯선 곳에서의 문화적 격차 등 탈북민들에게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힘겨운 언덕을 오를 때 이끌어 주고 밀어줄 친구가 필요하다. 남한과 북한, 각각 출신은 다르지만, 서로를 보듬어 줄 동행자로서의 관계맺기가 건강한 자립의 견인차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까지 남북한 출신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장벽이 여전히 높다. 탈북민, 새터민, 북향민, 자유민 등 그들을 부르는 용어는 다양하다. 특정 지역출신의 사람을 구별 짓는 이러한 용어들이 어쩌면 그들의 정체성 혼란과 정착의 어려움을 대변하는 듯하다. 남한에 입국해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은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여전히 “북한사람”이라는 용어로 구별되기도 한다. 탈북민 역시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대한민국에 입국한 북한이탈주민은 분명 대한민국 국민, 한국 사람이다. 그런데 탈북민들조차 남한 출신 사람을 지칭할 때 “한국사람”이라는 표현을 쓴다. 가령, “한국 사람들은 말을 너무 돌려서 합니다” 등의 표현이다. 탈북민도 분명 같은 한국 사람인데 자신들과 ‘한국사람’을 구분하는 것이다. 구별짓기는 또 다른 차별을 낳는다.
탈북민들의 안정적인 정착과 자립의 방해요소는 어쩌면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차별의 시선일지도 모른다. 탈북민에 대한 우리의 인식 전환이 필요할 때다. 통일과 통합은 거대담론이 아니라 우리 곁에 와 있는 북한 출신 주민들과 함께 살아가는 작은 실천에서부터 시작된다. 북한에 두고 온 고향과 가족 생각에 숱한 날들을 눈물로 지새우지만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는 우리 사회의 인식은 여전히 미약하다. 그렇기에 탈북민 지원은 제도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이해하는 마음에서부터 비롯된다.
남북한은 체제갈등을 넘어 ‘사람’에 대한 두려움, 거부감도 깊어지고 있다. 한민족이라 말하지만 오랜 분단으로 인해 문화, 정서적으로 많은 차이가 생겼다. 실제로 남북한 간 언어 차이는 심각하다. 통일은 바로 그런 남북한 사람들이 만나 함께 살아가야 할 일이다. 우리 곁에 온 탈북민들은 바로 다가올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리트머스지와 같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남북한 출신 사람들간 문화적, 인식적, 정서적 통합을 연습하는 일이다.
분단 70년의 세월은 그만큼 남북한 사람들간 문화, 정서, 인식의 단절을 초래했다. 한민족이기 때문에 같은 문화를 공유할 수 있다는 생각은 어쩌면 이제 우리의 섣부른 기대일지도 모른다. 남북한이 한 동포라 말하지만, 언어, 음식, 외형, 취향 등 문화적 이질감은 분단의 시간이 만들어 낸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다. 실제로 탈북민들은 발음,억양 등이 남한과 다른 면이 많다. 분명 같은 한글인데 신조어, 외래어를 많이 사용하는 남한에서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다. 어쩌면 그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방해하는 것은 날로 범람하고 있는 인터넷 신조어와 줄임말 등의 일상용어 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오랜 기간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만나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남북한이 제도와 법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고려해야 할 것은 남북한 주민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의 통합이 중요하다. 통일 과정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통합과 문화적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면 우리는 변화하는 북한의 사회상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북한 주민들의 생활 모습을 이해하고 남북한이 서로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는 인식적 기반을 통해 동질감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일이 남북한 사람들이 서로 만나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면, 지금 여기에서 문화접점을 통해 인식적 격차를 줄이고 서로를 알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통일준비다.
일상생활과 멀리 떨어진 거대담론으로써 통일이 아니라 우리 생활에서 직접 인지할 수 있는 통일논의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분단으로 인한 고통과 폐해가 우리의 실생활에 스며있으며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고착화된 분단의 일상을 극복할 수 있는 통일논의가 필요하다. 일상생활에서 구체적으로 통일을 사유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문화적 접근을 통해 지속적인 통일의지와 실천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기존의 정치, 경제적 차원의 통일이익이나 제도만의 통일이 아닌“사람간의 통합”이라는 문화와 정서적 접근을 통해 실제로“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넓혀가자. 쪼개진 마음이 하나로 모아질 때 분단의 장벽은 쉬이 허물어지리라 확신한다.
통합은 결코 거창한 말이나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바로 서로에 대한 인식과 시선의 문제다. 서로의 출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포용하는 것이 통합의 시작임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 곁에 온 탈북민과의 아름다운 동행이 바로 통일의 시작이다. 먼 훗날 언젠가 다가올 통일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나로부터 시작하는 통일연습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바로 당신이 통일이다.
이 글을 마무리할 때쯤, 뉴스 하나가 마음을 모질게도 무겁게 한다. 40대 탈북여성이 백골의 시신으로 발견되었는데, 겨울옷을 입은 것으로 보아 1년 전으로 추정된다는 기사다. 진정 사람을 위한 통일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는데, 정작 또 한 사람이 쓸쓸히 죽어가는 동안 누구도 그를 향해 가지 못했다. 홀로 아파하고 외로워할 때 손잡아 주지 못한 슬픈 분단인의 자화상처럼 필자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가한다. 홀로 두어 정말 죄송하다고. 부디 천국에 계시기를 기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