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지에서 국회까지, 글과 행동으로 소명의 길을 걷는 조경일
“‘우리는 소명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회귀 본능의 소명, 우리 모두의 것입니다.”
글 임지현 | 사진 최승대
세 번의 탈북 끝에 대한민국으로 정착한 조경일 씨, 처음엔 배가 고파서 까치걸음으로 두만강을 건넜다. 공안에게 발각되어 북송되었지만 또 한 번 강을 건넜고, 가족 생각에 제 의지로 다시 북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한창 뛰어놀 나이 16살에 세 번째 탈북을 감행한다. 배가 고파서가 아니었다. 그는 공부가 하고 싶었다. 꿈을 꾸고 싶었다.
"대한민국에선 꿈을 꿀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어요. 단순한 공부를 넘어서요. 그 확신은 결단으로 이어졌죠. 북한에서 여건상 하지 못했던 공부에 한이 맺혀 있었나 봐요. '책을 읽을 수만 있다면, 공부할 수만 있다면'이란 열망이 있었거든요. 배움에 대한 열정이었죠."
그렇게 1년 3개월 만에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의 검정고시 과정을 마친 조경일 씨는 그간 그가 붙잡고 실현했던 '가능성'을 누군가에게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막막한 현실 가운데 앞길이 보이지 않은 이들에게 '할 수 있다'는 말을 건네주고, 경직된 사회를 깨고자 한다. 이를 위해 그가 최근 선택한 방법은 '글'이다. NGO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보도, 언론사 칼럼, 그리고 본인의 SNS를 통해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그가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를 졸업하고부터다. 분노와 열망으로 가득 차 있는 그의 마음을 표현할 방법이 글이었다고 이야기한다.
"대학생 때, 제가 한국 사회, 현실에 대한 분노가 가득 차 있었거든요. 조국에 대한 열망과 함께요. 아직도 '분단'을 소비하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사회의 경직된 사고와 배제, 갈등의 모습이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제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누군가 이 글을 읽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다 보면 분명 선한 영향력이 있을 줄 믿어요. 글은 역사가 되고 말은 루머가 된다고 생각해요. 글의 힘은 꽤 크다고 봅니다."
조경일 씨는 본인의 생애를 글을 통해 세상에 전하기도 했다. 그는 <아오지까지>라는 저서에 살아온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 살아갈 이야기를 담아냈다. 남과 북을 모두 경험한 한 명의 청년이 한국 사회에서 마주하는 문제들을 다루며, 그 가운데에서도 꽃피우는 희망을 시사하고 있다.
본인의 목소리를 내는 방법은 '글'에서 그치지 않았다. 여러 활동을 통해 그만의 열망을 실현하고 있다. 정치학을 졸업한 조경일 씨는 8년 전부터 NGO에서 여러 역할을 수행했다. 통일코리아협동조합에서 발기인으로 시작해 현재는 이사로 활동하고 있고,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 위원, 뉴코리아네트워크 팀장, 한평정책연구소위원으로 분단의 아픔을 해소하고자 힘쓰고 있다. 수년 동안 다양한 활동을 거쳐온 그는 북한의 변화를 위해 정계에도 입문했다.
"분단의 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잖아요. 그중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이 가장 효과적으로 빠르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정치'라는 답을 얻었습니다. 경직된 우리의 몸과 생각을 녹여낼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해요. 남북을 경험한 입장에서 그 대안을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아오지에서 국회까지 거침없이 행진했다. 국회의원 보좌진으로도 활동한 그는 통일에 대한 열망이 이끄는 길로 당찬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영화 <인터스텔라> 중에서). 조경일 씨가 좋아하는 말이다. 특별히 같은 고향을 둔 이들에게 그는 그 답을 위해 내가 아닌 우리가 함께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소명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고향을 떠나온 이방인들에겐 회귀 본능의 소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끊임없는 대화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통일에 대한 모습, 그 방법에 대해 스스로 계속해서 질문하며 같이 나누는 것이 그 첫걸음이지 않을까요?"
통일은 곧 북에 가족을 둔 본인의 소명이라는 조경일 씨는 오늘도 '불가능'이란 장벽을 허물고 전진한다. 한계를 설정하지 않고 통일을 향한 꿈과 열망을 따라 걷는 그의 발걸음은 오늘도 당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