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희망 Greenlight를 따라 온 한송미
“위기 속에서도 때마다 찾아오는 기회를 발견했고,
그 희망을 따라 걸어왔어요.
그리고 지금은 그 희망을 전하려고 해요.”
글 임지현 | 사진 최승대
'늘 푸르고 아름답게 살라'는 의미로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 한송미. 송미 씨는 그 뜻을 따라 매 순간 감사하며 긍정적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인터뷰 하는 동안 그녀의 목소리로 전해지는 삶은 이름 그대로 아름다웠다.
한송미 씨는 2011년, 19살에 강을 건넜다. 이모 집에서 눈치를 보며 어린 시절을 보낸 그녀는 암담할 것만 같은 스무 살을 앞두고, 먼저 탈북한 엄마를 보고자 탈북을 결심했다.
"북한에서 초등학교도 못 다녔어요. 저를 거둬준 이모 눈치를 많이 봤거든요. 제 밥벌이는 제가 해야 될 것 같아서 나무도 하러 다니고, 밭일도 하고, 집안일도 했어요. 그렇게 수년을 지내다 보니 '엄마에게 가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더라고요. 언젠가부터 앞날이 참담하게 느껴졌거든요. 가면 혹시 공부를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고요."
결심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강을 건넌 한송미 씨는 한국에서 곧장 검정고시를 준비해 단숨에 통과했고, 대한민국 입국 1년 만에 대학을 진학했다. 하지만 영어라는 문턱이 생각보다 높아 어머니와 상의 끝에 입학을 포기하고 곧장 캐나다로 떠났다. 그녀는 캐나다에서 현지 중고등교육과정을 밟으며 영어를 익혔다. 생활비 마련을 위한 아르바이트도 꾸준히 감내 했다. 그렇게 한국에 돌아온 그녀는 지금까지 학업을 이어오고 있다.
"저는 10년 뒤에도 공부하고 있을 것 같아요. 아니, 죽을 때까지 공부할 거예요. 공부하면 선택권이 많아져요. 생각할 수 있는 힘도 생기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시야도 넓어져요. 혹 꿈을 두고 고민 중인 학생 분들이 계신다면,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더 공부하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무조건 공부하셔야 해요. 머리에 쥐가 나도, 공부를 먼저 하세요. 삶의 목표, 그를 위한 선택에 있어서 분명한 원동력이 될 거예요."
배움에 대한 열정을 삶으로 고스란히 드리우고 있는 그녀는 2019년, 영어에 대한 열망을 꽃피우기 시작했다. 그 행보 중 하나가 'FSI(Freedom Speakers International)'였다. FSI는 북에서 온 이들이 국제적인 무대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힘써주는 단체로, 그녀는 이 단체 활동 중에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대표님이 제 이야기를 책으로 내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하셔서요. 처음엔 '특별하지 않은, 북에서 온 사람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내 이야기가 흥미롭진 않을 텐데'라고 우려했지만, 자신감을 갖고 써봤어요. 북한에서 보면 어쩔 수 없이 남겨지는 아이들이 있거든요. 저처럼 부모님이 먼저 탈북 한 경우를 포함해서요. 그 부모와 아이들의 아픈 눈물을 전해주고자 했어요. 자유를 찾아 떠난 여정을 그려내면서요."
<Greenlight to Freedom>. 한송미 씨에게 자유를 찾아 떠난 여정의 초록 신호등은 엄마였다. 그녀는 엄마를 따라 강을 건넌 그녀의 일생을 책에 담아냈고, 책 발간 후 그녀는 더 많은 사명감을 부여받았다고 한다. 북한에 관심을 두고 있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분들에게 보다 더 괜찮은 답을 주기 위해 다시금 펜을 들고 공부하는 한송미 씨. 그녀는 앞으로 더 많은 것을 배워 제 사명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녀의 빛나는 정착기가 매번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세상을 등지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런 삶을 감내해 온 그녀는 수줍은 미소를 머금은 채 본인을 북한의 온정이 담긴 '두부밥'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두부를 만들려면 콩을 불리고 끓인 후, 있는 힘껏 짜내어 갈아내 만들어야 하잖아요. 두부밥은 또 거기에 밥을 얹고 이것저것 자르고. 손과 시간, 인내가 많이 드는 음식이에요. 그렇게 이런저런 과정을 다 거치고 나면 완성된 내가 되어있지 않을까요?"
한송미 씨는 위기 속에서도 때마다 찾아오는 기회를 발견했고, 그 희망을 따라 걸어갔다. 그리고 지금은 그 희망을 전하고자 한다. 그녀는 5년 후에 두부밥 가게를 열 계획을 하고 있다. 따뜻한 고향 음식을 나누며 삶을 다독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수줍은 미소를 머금으며 나누어 주었다. 가게를 운영하면서도 학업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포부도 전했다.
때론 음식으로, 또 때로는 본인의 목소리로 타인의 아픔을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녀의 푸르고 아름다운 행보를 기대하며 인터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