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의 끈
기자 김은경
기회의 끈
기자 김은경
어느덧 유리의 4학년 졸업 시즌이 다가왔다. 긴 4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잠깐일 수가 있을까? 처음 대학교에 진학할 때는 4년이 막막하게 길어 보였지만 시간은 너무 빠르게 흘러간다. 그녀 자신도 4학년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한다. 지나간 학교생활을 추억하며 그동안 일어났던 수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고 그녀는 말한다.
대부분 학생들처럼 유리의 졸업도 취업으로 이어진다. 그녀가 이렇게 취업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동안 쌓아온 신뢰로 인한 것이다. 학생으로서 학업에 성실하게 임하고, 그 외에도 수많은 교외활동들을 하면서 전문적이지 않지만 모든 영역에 있어서 배우는 자세로 임했다고 한다. 그런 그의 모습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게 그녀가 4학년 과정을 마치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그녀에게 취업 제안이 들어왔다. 그녀도 너무 놀라웠다고 한다. 그녀는 “저는 제 공부를 열심히 한 것뿐이고,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모든 활동에 임할 때 최선을 다한 것밖에는 다른 거 없어요. 예를 들면 시간을 철저히 지키고, 단 한 번의 지각, 결석, 조퇴가 없었어요. 그런데 그런 저의 모습을 예쁘게 봐주셔서 정말 다양한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냥 너무 감사하고, 제가 선택해서 가야 하는 상황이라서 너무 행복하기도 했어요.”라고 말했다.
우리는 대부분 4학년이 되면 취업 고민과 함께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 취업 준비를 한다. 그런데 유리는 그런 준비를 하나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지금 하고 있는 학업에 집중하고 싶어서였다. 늦게 대학교에 들어 간 그녀에게는 4학년 마지막 학기 수업까지도 매우 소중했다. 항상 도전에 도전을 거듭하는 그녀에게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과정이 귀하고 소중하기만 하다. 그녀는 학업과 동시에 과외도 하고, 실물경제 공부도 병행했다. 그 덕분에 취직은 경제와 연관이 있는 곳으로 하게 됐다.
이번에 유리를 통해 한 가지 더 알게 된 것이 있다. 그녀는 동기 또는 멘토 등 함께 했던 친구들 집에 초대돼 갔다. 한국에서는 정말 친구로 여기면 가족들에게 소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그녀는 말한다. 집에 초대를 받은 그녀는 북한에서처럼 생각하고 놀러 갔다고 한다. 그런데 가 보면 부모님들도 계시고, 또는 형제자매가 있는 집도 있다고 한다. 또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친구의 부모들과 연락하기도 한다. 친구의 소개로 그렇게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대부분 친구들끼리만 연락하고 지내기 마련이지만 유리는 친구의 가족들까지 알고 지내는 사이가 된 것이다. 그녀의 이런 인간관계가 또 그녀에게 기회를 가져다준 것이 아닐까?
매번 느끼는 부분이지만 그녀에게는 특징이 있다. 뭐든 지금 하고 있는 것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일은 그다음에 집중해서 한다. 우리는 대부분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힘들어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무언가 남들보다 한발 늦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유리의 동기들도 하나같이 그렇게 앞으로의 취업을 위해 매일매일 고군분투했다고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북향민에게 있어서 좋은 학교를 나왔다고 해서 좋은 직장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학생들은 대부분 자신의 학력과 커리어에 맞게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그런 곳에 취직을 한다. 그만큼 능력도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은 북향민 학생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정보의 형평성을 갖춘 상태다. 즉 대학교에 오기까지 배우고, 경험하고,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이 포함된다. 그러나 그 20년이라는 기간을 경험하지 못한 북향민 대학생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게다가 그들은 그때부터 그동안 대학생활을 위해 달려온 한국 학생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즉 그들은 의식주 모든 것을 해결함과 동시에 학업적으로도 매일매일 경쟁의 도가니 속에서 몸부림쳐야 한다. 이 모든 것의 연결고리가 결국은 취업까지 위협하게 된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유리의 대학생활도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대한민국은 자신만 포기하지 않으면 수많은 기회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떤 선택을 하던 한 가지를 선택하면, 한 가지는 포기해야 한다. 유리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어요. 아니 한 가지만 갖고 가야 할 때가 많아요. 그 한 가지를 갖고 가기 위해서는 다른 것을 포기해야 해요.”라고 말하며 이어 “저로 말하면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일을 할 것인가? 공부를 할 것인가? 이 두 가지를 놓고 많은 고민을 했었어요. 살아가려면 경제적인 것이 가장 우선인데 그것을 포기하고, 정말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대학교에 갈 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 그런 선택을 하기에는 정말 힘든 과정이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저를 이상하게 보기까지 했어요. 그 사람들의 말도 일리는 있어요. 근데 그건 틀린 것 같아요. 저를 판단하기에는 그 사람들이 저의 성향과 저의 과거를 너무 모른다는 거죠. 그래서 상처받지는 않았어요.”라고 그때의 일을 떠올렸다.
그렇다. 어떤 선택을 하던 결과는 본인의 책임이다. 유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과거에 누군가를 나의 잣대로 평가하고, 판단하려고 한 적이 없는지 반성하게 된다. 내가 아는 그 사람의 모습이 극히 일부일 뿐인데 그것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상처 주지 않았을까? 오늘 유리의 이야기를 통해 잊고 있었던 중요한 부분을 다시 새기게 되었다. 익숙한 나머지 하게 되는 실수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