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없지만 하고 싶은 건 많습니다
기자 하지현
꿈은 없지만 하고 싶은 건 많습니다
기자 하지현
‘앞으로의 장래희망을 적으시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질문을 한 번씩은 받아 봤을 것이다. 나는 이 질문이 아주 지긋지긋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저 질문을 다시는 안 받을 수 있겠구나 하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장래희망이라는 단어만 바꾸어 같은 맥락의 질문들의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진로, 취업, 앞으로의 계획, 전공선택 이유 등등)
처음 내가 저 질문을 받은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 가정 통신문이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종이를 주시면서 내일까지 자신의 장래희망과, 부모님이 희망하는 나의 장래희망을 적어오라고 하셨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 종이에 무엇을 적어야 할지 고민했던 때가 말이다. 장래희망, 앞으로의 꿈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 무엇인가 거창해 보였다. 그래서 잘 적어야 했던 것만 같았다. 아주 사소한 것들을 적으면 초라해 보일까 봐, 반대로 아주 대단해 보이는 걸 적으면 내가 그걸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어서 나는 항상 그것에 적정한 선을 찾아서, 남들이 의문을 가지지 않을 만큼의 답을 적었던 것 같다.
무엇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기 전에 나는 나중에 커서 무엇을 직업으로 삼고 싶냐는 질문부터 받아왔다. 그러다 보니 아직도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잘 모른 채 무엇을 직업으로 가져야 하는지를 먼저 고민하고 있다. 무엇보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가끔 누군가가 나에게 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나는 망설이곤 한다. 그런 걸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에 대한 답을 내가 잘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걸 취미라고 할 수 있나?,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나? 라는 의문점이 생기곤 한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답변을 망설이게 된다.
그리고 요즘은 가끔 그러한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요즘 세상은 취미도 당연히 가져야 한다는 의무감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 말이다. 취미가 없는 사람이 되면 무엇인가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곤 한다. 취미가 무엇인가요? 라는 질문에 이상하게 답이 정해진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유튜브 시청, 넷플릭스 시청 이런 것들을 취미라고 말하기 보다는 운동, 그림 그리기, 캠핑 등등의 그런 것들을 답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고, 앞으로의 진로도 잘 모를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 때 일찍이 꿈(장래희망)이 있는 친구들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부러웠다.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그 친구들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하여 잘 알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하여 다 아는 것만 같아서 부러웠다. 하지만 나중에 친구들에게 물어봤을 때 그 친구들도 사실은 그냥 겉보기로 정한 거지 자신이 진짜 그것을 하고 싶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 (사실 충격이었다. 겉보기에는 정말 진로에 대한 고민이 별로 없어 보였는데, 실제로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 말이다.)
그것이 나에게 위안이 되었다. 나만 모르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이라고 할까?
대학생이 된 나에게 어릴 적 받은 똑같은 질문 ‘앞으로의 장래희망을 적으시오’라는 질문지를 준다면 나는 어릴 때와 똑같이 망설일 것 같다. 물론 거기에 무엇을 정확하게 적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있지만, 지금은 거기에 더해 아직 해 보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고, 경험해 보고 싶은 것들도 많다. 그래서 거기에 무엇이라고 명확하게 적기가 어려울 것 같다.
이러한 말을 하는 나에게 가끔 누군가 나한테 말을 하곤 한다. 정확한 목표가 있어야 해요! 그래야지 삶의 원동력이 되고 좀 더 확실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당신이 말한 건 그냥 아직도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하여 잘 모르는 거라는 말을 들을 때도 있다. 일부 맞는 말이다. 그래서 더 신경 쓰이지만 나는 그 말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선택한 방법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나는 그냥 현재를 즐기며, 다시 돌아오지 않을 21살을, 새내기를 즐기고 싶다.
목표, 진로, 취업 등등의 질문들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싶다.
그렇지만 가끔 불안한 나 자신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몰라도 된다고, 또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잘 몰라도 된다고 말이다. 오히려 지금 잘 모르니 앞으로 잘 찾아가면 된다고 말이다. 그러니 새로운 무엇인가를 하려고 할 때 해야 하는지, 아닌지를 고민한다면 무조건 다 해 보라고 이야기 해주고 싶다.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도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른다고 말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서 나와 같은 고민을 하신 분이 있다면 나도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직업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고, 인생이란 내가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 법이니, 그냥 지금의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들을 열심히 해나가고 싶다. 남들의 시선과, 주변 사람들을 비교하는 그런 것들 말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말이다.
언젠가 지금 내가 하는 것들이 쓸모없고, 시간 낭비 같아 보여도 나는 그것들이 먼 훗날 나의 인생 어느 한 페이지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굳건하게 믿는다.
어떤 길을 가든 나는 나 자신을 믿고 응원하기를 기도하며 올해 마지막 기사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