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지 않는 선택으로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마라토너,
남북 통합 1호 한의사 김지은
“‘포기하지 않는 선택’을 했기 때문에
오늘에 이른 것이라고 생각해요.
언젠가는 반드시 정착점에 이릅니다.”
글 임지현 | 사진 최승대
회의감(懷疑感): 의심이 드는 느낌(출처: 표준국어대사전)
회의감은 누군가에겐 다른 길로 돌아가는 이정표가 될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겐 그다음 단계로 갈 수 있는 디딤돌이 되기도 한다. 오늘 만난 한의사 김지은 씨는 수 년 간 쌓인 회의감을 더 많은 생명을 살리기 위한 도약의 발판으로 삼았다.
김지은 씨는 청진 의학대학을 졸업하고 10년 동안 소아과 의사로 수백, 수천 명의 아이를 만났다. 처음 병원을 들어설 때, 자신이 의사가 되기까지 뒷받침해준 북한 사회에 대한 고마움에 사회에 헌신과 충성하겠노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하지만 고난의 행군 즈음부터 매일 같이 죽음을 봐야 했다.
"내일 아침엔 또 어떤 아이 얼굴을 못 보게 될까, 매번 이런 생각을 하며 퇴근했어요. 출근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어제 위독하던 아이가 밤새 세상을 뜨지는 않았을까, 싶었죠. 전혀 예상치 못한 다른 아이가 사망하진 않았을까 걱정도 했구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출퇴근할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드니까 견딜 수가 없겠더라구요. 북한 사회가 훌륭한 사회라고 생각했는데, 그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어요. 저는 분명 의사인데, 약만 있으면 살 수 있는 아이들의 생명조차 구할 수 없다는 생각에 굉장히 힘들었죠."
의사로서 무력감과 회의감에 휩싸였다. 김지은 씨는 약이 없어서, 또는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해서 죽어가는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강 너머를 보기 시작했다. 중국에 오가는 사람들, 북송을 겪고도 또다시 강을 건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저편의 세상은 도대체 어떤 세상이길래 목숨을 거는가 싶었다.
"대체 그곳에 뭐가 있길래 오가는가 싶어 아주 잠깐 중국에 나와볼까 하는 생각에 강을 건넜어요. 한국까지 오겠단 생각을 한 건 아니었죠. 한 3년 정도 시골 동네에서 노인들을 돌봐주며 신분을 숨기며 지냈는데, 어느 날 공안에 잡혀 북송의 갈림길에 놓였어요."
그간 노인들을 돌보며 마을에서 신임을 얻은 덕분인지, 동네 주민들은 공안에 힘을 써 김지은 씨를 빼내 주었다. 그렇게 다시는 그 마을로 들어가지 못하는 처지에 이르자 동네 주민들은 그녀에게 북경에 가는 기차표를 끊어주고, 기차역까지 데려다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이후 북경에서 장사, 일용직 등의 일을 마다하지 않았고, 파출부로 일하던 중에 만난 한국인 교수의 도움을 받아 한국까지 오게 됐다. 북한에서부터 한국으로 오기까지, 김지은 씨 주변에는 늘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 모든 과정엔 '포기하지 않는 선택'이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떠나겠다'는 결심 자체도 선택이잖아요. 중국에서 한국으로 온 것도 선택이구요. 한국에서도 공부, 직장생활, 여러 선택을 많이 했는데, 저는 매번 '포기하지 않는 선택'을 했어요. 놔버리고 싶단 생각도 분명 많이 했죠.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선택'을 했기 때문에 오늘에 이른 것이라고 생각해요."
한 아이의 엄마로, 대한민국 한의사로, 서울 소재 법대 박사 재학생으로 그리고 대한민국의 당찬 일원으로 살아가는 김지은 씨는 어제도, 오늘도 '포기하지 않는 선택'을 하고 있다. 한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도 탈북민을 향한 질타의 목소리와 편견 어린 눈초리를 받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는 사회에 더 치열하게 적응하도록 했고,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을 해야겠단 생각에 도달했다. 경력을 살려 의학을 다시 하고자 했으나 북한에서의 10여 년 의료 경력을 전혀 인정받지 못했다. 북한에서 자격증을 가져오란 정부의 터무니 없는 소리에 국회에 청원을 넣어 국회의원을 설득했고, 청원 3년 만에 관련 법안이 통과돼 북한에서의 경력을 인정 받아 관련 시험을 칠 수 있는 자격을 부여 받았다. 그렇게 2009년, 그녀는 한의사 국가고시에 통과해 한의사가 됐다.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것에 최적의 방법이라 여긴 길이었다.
남북한 통합 1호 한의사, 김지은 씨의 본래 꿈은 '법학'이었다. 북한에서도 의학 대학이 아닌 법학대학에 가고 싶었다. 한의사로 많은 환자를 치료하면서 희미해지고 있던 그 꿈이 조금씩 짙어지기 시작했다.
"2018년에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면서, 보건의료 분야도 언젠가 남북이 나란히 앉아 함께할 수 있는 날을 맞이하겠다란 생각했어요. 남과 북 양쪽의 의학대학을 모두 경험한 건 저밖에 없거든요. 모두를 겪어본 입장에서 비교하고 분석할 것도 많구요. 북한 보건의료가 나아져야 할 부분도 많구요. 그를 위해 시스템과 통합 방법, 정책 등 많은 것이 필요하잖아요. 그 근간엔 법이 있어야 하겠죠. 법적 기준이요. 이에 도움이 되고자 법학을 시작했어요."
관련 소논문으로 법무부와 통일부에서 여러 차례 수상한 김지은 씨는 현재 '남북한 의료법'을 중심으로 한 박사 논문을 준비 중이다. 뿐만이 아니다. 남북보건의료 교육재단 운영위원으로,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전문위원, (사)대한여한의사회 홍보이사, 사회통합교육원 남북 동행포럼 공동원장 등으로 활동하며 한 시도 빠짐없이 자신의 달란트를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인생은 마라톤. 김지은 씨의 좌우명이다. 자기 페이스를 잃지 않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달리면 언젠가 정착점에 이른다고 이야기한다.
"1등이 내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느긋하게 가되, 포기하지 말자고 되뇌이며 살아가고 있어요. 그만하고 싶고, 주저앉고 싶고. 온갖 유혹들이 있을 테지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정착점에 이릅니다. 마라톤을 완주하면 결과보단 과정에 주는 찬사가 있기 마련이죠."
그녀는 과거에 유서를 두 번이나 썼다. 회의감과 무력감이 난무하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김지은 씨는 항상 '포기하지 않는 선택'을 했다. 분명 그녀도 주저앉고 싶은 순간이 있을 테지만, 이 세 가지를 스스로 당부하며 오늘에 최선을 다한다.
'인내와 끈기, 그리고 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