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현장 아르바이트


기자 김은경

경험의 현장 아르바이트


기자 김은경

한 대학생이 있다. 대한민국에 와서 특히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에서 첫걸음을 뗀 학생이다. 그녀의 이름은 한하나. 대학교 2학년부터 졸업 시까지 단 한 번도 아르바이트를 멈춘 적이 없다고 한다.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쉬지 않고 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녀는 “가장 먼저는 돈을 벌기 위해서 였어요. 대학교 1학년 1학기 성적이 전 4년 과정을 좌우한다는 것을 저는 몰랐었거든요. 1학년 1학기 성적에 따라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는데 저는 혼자 공부를 해서 학교에 오다 보니 그런 정보를 알 길이 없었어요. 생활비와 숙식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라고 말했다.


하나 학생처럼 정보의 비대칭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이는 케이스들도 자주 보게 된다. 어느 분야에 있든 정보의 일선에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 정보를 몰라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경우도 있다. 하나 학생은 이런 상황에 불평하기보다는 아르바이트를 한국을 이해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여겨 그렇게 힘든 줄을 몰랐다고 한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초창기부터 그런 마음은 아니었다고 한다.


장학금을 받고 학업에 더 매진하는 학생들의 성적이 더 좋을 수밖에 없다. 학생마다 개인 사정이 많지만, 학생이라는 명목 하에 학점이 그 학생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따라서 학점에 목메는 대학생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러한 경쟁 구도에서 학업에 할애해야 하는 시간을 아르바이트에 쏟다 보면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쳐 공부할 의지를 잃기도 한다. 하나 역시 논외가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도 하나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은 자신의 상황에 맞게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주마다 1번씩 하는 경우도 있고, 주말만 즉 2일 동안만 일을 할 수도 있다고 웃으면서 말한다.


하나의 경우는 가끔 지인들로부터 강의를 부탁 받아 1년에 4~5회 정도 중고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강사로 활동할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식당, 세계 마트, 과외, 강의를 비롯한 다양한 영역에서 일하면서 한국 사회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됐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세계 마트에서 그녀는 캐셔 및 매장관리, 중국어를 담당했다고 한다. 중국인 손님들이 상품을 구매하려고 하면 그녀의 도움이 필요했다. 해당 매장에서는 아르바이트생 각자마다 담당하는 언어가 있었다고 한다. 한 명은 일어, 다른 한 명은 중국어, 또 다른 한 명은 베트남어 등이다. 영어는 기본이었다고 한다. 당시 하나는 매장에 있는 모든 물품이 어떤 회사들로부터 생산되는 것이며 그 상품의 유통 원가는 얼마이며, 또한 판매단가는 얼마인지, 나아가 직원 복지 가격까지 알게 되면서 대한민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식품의 대부분을 공부하게 됐다고 한다.


명동의 어느 한 마트


그녀는 당시의 상황을 생각하며 “저는 그때 처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마트라고 하면 대부분 저희가 생각하는 것은 동네에 있는 마트처럼 생각하는데 제가 일했던 곳은 외국인을 상대로 식품만 즉 대한민국에서 나오는 식품을 대부분 판매했습니다. 명동에만 매장이 5곳 정도 있었어요. 매장이 매우 컸어요. 제가 간식을 안 좋아하기 때문에 식품매장이 그렇게 클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그리고 놀라웠던 것은 명동 하면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는 중국인이 많을 것으로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현실은 일본인이 가장 많았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하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나 역시도 명동 하면 중국인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일본인이 가장 많다니 정말 의외다. 이 외에도 하나는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마트에서 일하면서 판매 뿐 만 아니라 홍보도 했다고 한다. 식품이다 보니 재고 처리를 하거나 혹은 계절에 따라 또는 성수기, 비성수기에 따라 가격 변동이 생길 시 그것을 다 손으로 작성해야 한다고 한다. 식품명도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적어야 하며 광고 문구도 손으로 직접 작성해야 해서 정말 다방면적으로 일했었다라고 한다. 면접에서 글을 잘 쓰는지를 물어보는 것은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하나하나의 경험들이 모여 한국을 이해하고, 나아가 대한민국의 산업 시스템을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명동 밤 거리

하나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참고해야 할 중요한 사항이 있다. 인생에 있어서 어떠한 경험도 성장해 나가는 과정일 뿐이다. 장학금을 받고 공부에만 매진할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하나처럼 아르바이트라는 경험을 통해서 한국의 식품 유통 과정을 이해하고 식품을 생산하는 회사들을 공부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식품 시스템을 이해하는 그런 우리가 된다면 이 또한 다른 삶의 방식을 설계할 수 있는 하나의 지침표가 될 수 있다.

경험의 현장 아르바이트

기자 김은경

한 대학생이 있다. 대한민국에 와서 특히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에서 첫걸음을 뗀 학생이다. 그녀의 이름은 한하나. 대학교 2학년부터 졸업 시까지 단 한 번도 아르바이트를 멈춘 적이 없다고 한다.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쉬지 않고 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녀는 “가장 먼저는 돈을 벌기 위해서 였어요. 대학교 1학년 1학기 성적이 전 4년 과정을 좌우한다는 것을 저는 몰랐었거든요. 1학년 1학기 성적에 따라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는데 저는 혼자 공부를 해서 학교에 오다 보니 그런 정보를 알 길이 없었어요. 생활비와 숙식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라고 말했다.


하나 학생처럼 정보의 비대칭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이는 케이스들도 자주 보게 된다. 어느 분야에 있든 정보의 일선에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 정보를 몰라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경우도 있다. 하나 학생은 이런 상황에 불평하기보다는 아르바이트를 한국을 이해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여겨 그렇게 힘든 줄을 몰랐다고 한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초창기부터 그런 마음은 아니었다고 한다.


장학금을 받고 학업에 더 매진하는 학생들의 성적이 더 좋을 수밖에 없다. 학생마다 개인 사정이 많지만, 학생이라는 명목 하에 학점이 그 학생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따라서 학점에 목메는 대학생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러한 경쟁 구도에서 학업에 할애해야 하는 시간을 아르바이트에 쏟다 보면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쳐 공부할 의지를 잃기도 한다. 하나 역시 논외가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도 하나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은 자신의 상황에 맞게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주마다 1번씩 하는 경우도 있고, 주말만 즉 2일 동안만 일을 할 수도 있다고 웃으면서 말한다.


하나의 경우는 가끔 지인들로부터 강의를 부탁 받아 1년에 4~5회 정도 중고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강사로 활동할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식당, 세계 마트, 과외, 강의를 비롯한 다양한 영역에서 일하면서 한국 사회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됐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세계 마트에서 그녀는 캐셔 및 매장관리, 중국어를 담당했다고 한다. 중국인 손님들이 상품을 구매하려고 하면 그녀의 도움이 필요했다. 해당 매장에서는 아르바이트생 각자마다 담당하는 언어가 있었다고 한다. 한 명은 일어, 다른 한 명은 중국어, 또 다른 한 명은 베트남어 등이다. 영어는 기본이었다고 한다. 당시 하나는 매장에 있는 모든 물품이 어떤 회사들로부터 생산되는 것이며 그 상품의 유통 원가는 얼마이며, 또한 판매단가는 얼마인지, 나아가 직원 복지 가격까지 알게 되면서 대한민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식품의 대부분을 공부하게 됐다고 한다.


명동의 어느 한 마트


그녀는 당시의 상황을 생각하며 “저는 그때 처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마트라고 하면 대부분 저희가 생각하는 것은 동네에 있는 마트처럼 생각하는데 제가 일했던 곳은 외국인을 상대로 식품만 즉 대한민국에서 나오는 식품을 대부분 판매했습니다. 명동에만 매장이 5곳 정도 있었어요. 매장이 매우 컸어요. 제가 간식을 안 좋아하기 때문에 식품매장이 그렇게 클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그리고 놀라웠던 것은 명동 하면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는 중국인이 많을 것으로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현실은 일본인이 가장 많았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하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나 역시도 명동 하면 중국인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일본인이 가장 많다니 정말 의외다. 이 외에도 하나는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마트에서 일하면서 판매 뿐 만 아니라 홍보도 했다고 한다. 식품이다 보니 재고 처리를 하거나 혹은 계절에 따라 또는 성수기, 비성수기에 따라 가격 변동이 생길 시 그것을 다 손으로 작성해야 한다고 한다. 식품명도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적어야 하며 광고 문구도 손으로 직접 작성해야 해서 정말 다방면적으로 일했었다라고 한다. 면접에서 글을 잘 쓰는지를 물어보는 것은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하나하나의 경험들이 모여 한국을 이해하고, 나아가 대한민국의 산업 시스템을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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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참고해야 할 중요한 사항이 있다. 인생에 있어서 어떠한 경험도 성장해 나가는 과정일 뿐이다. 장학금을 받고 공부에만 매진할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하나처럼 아르바이트라는 경험을 통해서 한국의 식품 유통 과정을 이해하고 식품을 생산하는 회사들을 공부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식품 시스템을 이해하는 그런 우리가 된다면 이 또한 다른 삶의 방식을 설계할 수 있는 하나의 지침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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