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과거의 기억들은 마음을 뒤흔들기 일쑤입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특히 이별에 대한 기억이 감정을 뒤흔들곤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편지 상자’는 저에게 있어 소중한 보물 상자였습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모은 편지들은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여 손에 닿을 때마다 먼 곳의 기억을 불러일으키곤 했습니다. 상자를 열어 과거의 편지를 읽다 보면 몇 개는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되고, 몇 개는 어렴풋하거나 낯설게 느껴집니다. 편지 안에서 ‘영원한 우정, 영원한 사랑’과 같은 말을 발견할 때마다 영원을 좇다 머물러 있는 흐린 얼굴들이 떠오르곤 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이별을 겪어왔습니다. 가장 좋아했던 장난감과의 소소한 이별, 좋아하는 선생님과의 감동적인 이별, 친한 친구와의 애절한 이별, 그리고 사랑한 이와의 어느새 큰 이별까지, 각자의 아픔과 추억을 남겼습니다. '이별'이라는 단어에 떠오르는 얼굴은 누구에게나 있을 터입니다. 여러분이 '이별'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첫 번째 사람은 누구일까요?
저에게는 그 첫 번째 사람이 아빠입니다. 항상 북을 떠나던 그 순간 아빠와의 이별을 되새겨보게 됩니다. 2009년, 중국으로 먼저 떠나갔던 엄마에게서 온 연락을 시작으로 2010년 저는 브로커의 도움을 받아 중국에 있는 엄마의 곁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양강도 혜산시’ 저의 고향에서의 추억을 뒤로하고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떠났을 때, 저의 나이는 겨우 10살이었습니다. 마지막 아빠가 저를 꽉 안아주던 그 온기는 아직 저의 맘 깊은 속에 남아있습니다. 그때의 그 순간은 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자 아빠와의 마지막 추억이 되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이별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저는 당시 헤어짐을 영원한 이별이 아닌 잠깐의 이별로 여겼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나만 아빠가 없다는 생각 때문에 아주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당시 나를 보내던 아빠의 심정은 어땠을까? 라는 생각에 뭉클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나를 위해 엄마에게로 보내준 아빠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러한 이별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츰 괜찮아지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나 인생은 이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이별을 받아들이는 순간이 오면 새로운 이별의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저의 또 다른 이별은 초등학교를 떠나 서울에서 인천으로 이사 가는 과정에서 겪은 친구들과의 이별입니다. 당시의 상실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컸고, 슬펐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저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성장하며 이별의 아픔을 극복해 나갔습니다.
가끔 누군가와 평생 함께 알고 지내고 싶고,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저의 마음대로 되는 일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이별이란 겪어도 겪어도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고, 회복 탄력성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별을 경험하는 순간마다 느낍니다. 언제 괜찮아질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괜찮아질 것이라는 긴 시간 속에서 나를 헤매게 만듭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제가 경험한 모든 이별이 저를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믿습니다. 각각의 이별은 저를 성장시키고, 저만의 삶을 채워나가는 하나의 조각이 되었습니다.
20대의 우리는 아직도 많은 이별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별들은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고, 더욱 단단하게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헤어짐이 있으면 새로운 만남이 있는 것처럼 이별은 어쩌면 다가오는 새로운 시작의 전조일 수도 있습니다.
가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과거의 기억들은 마음을 뒤흔들기 일쑤입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특히 이별에 대한 기억이 감정을 뒤흔들곤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편지 상자’는 저에게 있어 소중한 보물 상자였습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모은 편지들은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여 손에 닿을 때마다 먼 곳의 기억을 불러일으키곤 했습니다. 상자를 열어 과거의 편지를 읽다 보면 몇 개는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되고, 몇 개는 어렴풋하거나 낯설게 느껴집니다. 편지 안에서 ‘영원한 우정, 영원한 사랑’과 같은 말을 발견할 때마다 영원을 좇다 머물러 있는 흐린 얼굴들이 떠오르곤 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이별을 겪어왔습니다. 가장 좋아했던 장난감과의 소소한 이별, 좋아하는 선생님과의 감동적인 이별, 친한 친구와의 애절한 이별, 그리고 사랑한 이와의 어느새 큰 이별까지, 각자의 아픔과 추억을 남겼습니다. '이별'이라는 단어에 떠오르는 얼굴은 누구에게나 있을 터입니다. 여러분이 '이별'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첫 번째 사람은 누구일까요?
저에게는 그 첫 번째 사람이 아빠입니다. 항상 북을 떠나던 그 순간 아빠와의 이별을 되새겨보게 됩니다. 2009년, 중국으로 먼저 떠나갔던 엄마에게서 온 연락을 시작으로 2010년 저는 브로커의 도움을 받아 중국에 있는 엄마의 곁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양강도 혜산시’ 저의 고향에서의 추억을 뒤로하고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떠났을 때, 저의 나이는 겨우 10살이었습니다. 마지막 아빠가 저를 꽉 안아주던 그 온기는 아직 저의 맘 깊은 속에 남아있습니다. 그때의 그 순간은 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자 아빠와의 마지막 추억이 되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이별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저는 당시 헤어짐을 영원한 이별이 아닌 잠깐의 이별로 여겼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나만 아빠가 없다는 생각 때문에 아주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당시 나를 보내던 아빠의 심정은 어땠을까? 라는 생각에 뭉클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나를 위해 엄마에게로 보내준 아빠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러한 이별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츰 괜찮아지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나 인생은 이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이별을 받아들이는 순간이 오면 새로운 이별의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저의 또 다른 이별은 초등학교를 떠나 서울에서 인천으로 이사 가는 과정에서 겪은 친구들과의 이별입니다. 당시의 상실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컸고, 슬펐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저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성장하며 이별의 아픔을 극복해 나갔습니다.
가끔 누군가와 평생 함께 알고 지내고 싶고,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저의 마음대로 되는 일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이별이란 겪어도 겪어도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고, 회복 탄력성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별을 경험하는 순간마다 느낍니다. 언제 괜찮아질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괜찮아질 것이라는 긴 시간 속에서 나를 헤매게 만듭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제가 경험한 모든 이별이 저를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믿습니다. 각각의 이별은 저를 성장시키고, 저만의 삶을 채워나가는 하나의 조각이 되었습니다.
20대의 우리는 아직도 많은 이별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별들은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고, 더욱 단단하게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헤어짐이 있으면 새로운 만남이 있는 것처럼 이별은 어쩌면 다가오는 새로운 시작의 전조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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