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아코디언 연주자 김엘인


“겁내지 말고 다양한 경험에 도전해보세요”



기자 한대의

아코디언은 한국에서 흔하지 않은 악기다. 클래식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요즘에서야 그 특유의 소리에 탄복하는 이들이 생기고 있지만, 과거엔 그냥 동구권을 대표하는 악기에 불구했다.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에서 예술인들이 많이 타던 악기여서 그런지 북한에서도 대중악기로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건반을 누르는 형태는 피아노와 비슷해서 아코디언을 다루는 예술인들은 피아노를 줄곧 잘 타는 것 같다. 게다가 음색도 피아노의 일부와 닮은 구석이 있다. 다만 압축된 고음의 매력은 다른 악기론 흉내 낼 수 없는 아코디언만의 영역이다. 그런 의미에서 음악의 한 장르인 클래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을 차지하는 아코디언 연주자 김엘인 음악가를 소개해보려 한다.

 

김엘인 연주자는 현재 서울신학대학교 실용음악과 2학년을 막 마친 만학도이다. 고향이 북한인 그는 십여년전 탈북해서 모진 고난 끝에 한국에 입국했다. 당시 음악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자신의 꿈보다 고향에 두고 온 부모님을 먼저 생각하며 수년간 공장에서 일을 하며 보살폈다. 이후 30대 후반이 돼서야 자신의 꿈이었던 예술인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음은 김엘인 연주자와의 일문일답이다.

음악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는가.

“제가 북한을 떠나 한국에 온지 벌써 10년도 넘었는데요. 어렸을 때부터 아코디언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어려운 환경이다 보니 한국에 와서 그 꿈을 이룬 거죠. 원래 한국에 왔을 때도 바로 음악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고향에 두고 온 부모님들 걱정에 그렇게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경제적인 지원을 부모님께 드린 후 대학 입학을 마음먹고 취직부터 먼저 시작했죠. 그리고 몇 년이 흐르고 경제적 여유가 생기다 보니 어릴 때 꿈인 음악을 다시 시작하게 됐어요.”

 

취직을 먼저 하셨다고 했는데 일하시는데 어려움은 없으셨나.

“당시 화장품 회사에 취직한 저는 고객을 상대로 하는 서비스직에서 일하게 됐어요. 그런데 제가 억양이 순화되지 못한 상황이어서 오는 고객마다 고향이 어디냐고 묻더라구요. 대부분 화교나 중국동포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들이 연출됐지만 극복해야겠다는 각오로 말투를 빨리 바꾸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는 발전했지만 워낙 많은 외래어 때문에 너무 힘들 때가 많았죠.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 같은 상황들이 펼쳐지는 것은 다반사였죠. 그래도 어쩌겠어요? 그냥 일하면서 공부하며 극복하는 수밖에요.”  

일을 하시다가 대학진학을 위해 입시준비를 했을 텐데 힘들지 않으셨나요?

“일하면서 고향에 있는 부모님을 도와드렸고, 또 그 과정에서 가정도 꾸리게 됐죠. 몇 년이 흐르니 여유가 좀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어릴 때 꿈을 위해 대학 진학을 준비하게 됐죠. 그런데 안하던 공부를 하다 보니 정말 힘들더라구요. 그래도 할 수 있다는 의지를 가지고 꾸준히 노력한 끝에 대학 진학에 성공하게 된 거죠. 사실 대학 진학 과정에 어떤 전공을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지금은 아코디언 연주자로 많이 알려졌지만, 대학에선 기타를 전공하고 있어요. 다루는 악기가 두 개인데, 사실 아코디언은 한국에 와서 독학으로 배웠죠.”

 

아코디언을 독학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어릴 때 고향에서 아코디언을 너무 배우고 싶었어요. 그런데 악기 자체가 워낙 비싼 악기인데다가 가정 형편이 안돼서 그땐 포기했죠. 지금 가지고 다니는 아코디언도 1000만 원이 훨씬 넘어요. 북한에서도 아코디언은 정말 비싼 악기였죠. 그래서 한국에 와서야 아코디언을 살 수 있었고, 유튜브 영상을 보며 독학했죠.”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어떤 채널인가.

“교회에서 아코디언으로 찬송가를 연주해왔죠. 그러다 코로나 펜데믹 기간 더 많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비바엠’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게 됐고, 아코디언 연주로 찬송가를 전파하게 된 거죠. 사실 찬송으로 사역하는 분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몇 분 안 계시더라구요. 그리고 탈북민 중에는 찬송가에 대해 관심 있는 분들도 많아요. 교회를 안 다니더라도 찬송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고 유튜브 채널을 통해 아코디언으로 찬송가를 연주하게 됐죠. 유튜브 찬양 채널에서 찬송가를 연주하며 섬기다 보니 오히려 저의 믿음이 성장하게 됐죠.”

 

어떤 미래 비전을 갖고 있는가.

“크리스천으로서 찬양 사역자로 계속할 것 같아요. 대한민국에 700여 명이 넘는 탈북민 목사들이 계시고 또 300개가 넘는 개척교회가 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찬양 사역자는 몇 명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앞으로 통일이 돼도 북한으로 가서 찬양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그런 찬양 사역자가 되는 것이 제 비전이에요.”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정말 앞날에 대해 겁내지 말고 도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항상 자신을 믿고, 또 믿음이 있는 분들은 하나님이 역사하심을 믿고, 열심히 노력하면 원하는 결과들을 얻을 수 있다 생각해요. 그리고 가고자 하는 길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분야에서도 이뤄질 수가 있으니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하길 바라요. 믿음을 가지고 노력하면 길은 열리게 되고, 그 길에서 의도치 않게 자신의 능력을 쓰임 받는 날이 반드시 올 거에요.”  

기타&아코디언 연주자 김엘인


“겁내지 말고 다양한 경험에

도전해보세요


기자 한대의

아코디언은 한국에서 흔하지 않은 악기다. 클래식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요즘에서야 그 특유의 소리에 탄복하는 이들이 생기고 있지만, 과거엔 그냥 동구권을 대표하는 악기에 불구했다.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에서 예술인들이 많이 타던 악기여서 그런지 북한에서도 대중악기로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건반을 누르는 형태는 피아노와 비슷해서 아코디언을 다루는 예술인들은 피아노를 줄곧 잘 타는 것 같다. 게다가 음색도 피아노의 일부와 닮은 구석이 있다. 다만 압축된 고음의 매력은 다른 악기론 흉내 낼 수 없는 아코디언만의 영역이다. 그런 의미에서 음악의 한 장르인 클래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을 차지하는 아코디언 연주자 김엘인 음악가를 소개해보려 한다.

 

김엘인 연주자는 현재 서울신학대학교 실용음악과 2학년을 막 마친 만학도이다. 고향이 북한인 그는 십여년전 탈북해서 모진 고난 끝에 한국에 입국했다. 당시 음악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자신의 꿈보다 고향에 두고 온 부모님을 먼저 생각하며 수년간 공장에서 일을 하며 보살폈다. 이후 30대 후반이 돼서야 자신의 꿈이었던 예술인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음은 김엘인 연주자와의 일문일답이다.



음악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는가.

“제가 북한을 떠나 한국에 온지 벌써 10년도 넘었는데요. 어렸을 때부터 아코디언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어려운 환경이다 보니 한국에 와서 그 꿈을 이룬 거죠. 원래 한국에 왔을 때도 바로 음악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고향에 두고 온 부모님들 걱정에 그렇게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경제적인 지원을 부모님께 드린 후 대학 입학을 마음먹고 취직부터 먼저 시작했죠. 그리고 몇 년이 흐르고 경제적 여유가 생기다 보니 어릴 때 꿈인 음악을 다시 시작하게 됐어요.”

 

취직을 먼저 하셨다고 했는데 일하시는데 어려움은 없으셨나.

“당시 화장품 회사에 취직한 저는 고객을 상대로 하는 서비스직에서 일하게 됐어요. 그런데 제가 억양이 순화되지 못한 상황이어서 오는 고객마다 고향이 어디냐고 묻더라구요. 대부분 화교나 중국동포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들이 연출됐지만 극복해야겠다는 각오로 말투를 빨리 바꾸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는 발전했지만 워낙 많은 외래어 때문에 너무 힘들 때가 많았죠.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 같은 상황들이 펼쳐지는 것은 다반사였죠. 그래도 어쩌겠어요? 그냥 일하면서 공부하며 극복하는 수밖에요.”  



일을 하시다가 대학진학을 위해 입시준비를 했을 텐데 힘들지 않으셨나요?

“일하면서 고향에 있는 부모님을 도와드렸고, 또 그 과정에서 가정도 꾸리게 됐죠. 몇 년이 흐르니 여유가 좀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어릴 때 꿈을 위해 대학 진학을 준비하게 됐죠. 그런데 안하던 공부를 하다 보니 정말 힘들더라구요. 그래도 할 수 있다는 의지를 가지고 꾸준히 노력한 끝에 대학 진학에 성공하게 된 거죠. 사실 대학 진학 과정에 어떤 전공을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지금은 아코디언 연주자로 많이 알려졌지만, 대학에선 기타를 전공하고 있어요. 다루는 악기가 두 개인데, 사실 아코디언은 한국에 와서 독학으로 배웠죠.”

 

아코디언을 독학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어릴 때 고향에서 아코디언을 너무 배우고 싶었어요. 그런데 악기 자체가 워낙 비싼 악기인데다가 가정 형편이 안돼서 그땐 포기했죠. 지금 가지고 다니는 아코디언도 1000만 원이 훨씬 넘어요. 북한에서도 아코디언은 정말 비싼 악기였죠. 그래서 한국에 와서야 아코디언을 살 수 있었고, 유튜브 영상을 보며 독학했죠.”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어떤 채널인가.

“교회에서 아코디언으로 찬송가를 연주해왔죠. 그러다 코로나 펜데믹 기간 더 많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비바엠’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게 됐고, 아코디언 연주로 찬송가를 전파하게 된 거죠. 사실 찬송으로 사역하는 분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몇 분 안 계시더라구요. 그리고 탈북민 중에는 찬송가에 대해 관심 있는 분들도 많아요. 교회를 안 다니더라도 찬송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고 유튜브 채널을 통해 아코디언으로 찬송가를 연주하게 됐죠. 유튜브 찬양 채널에서 찬송가를 연주하며 섬기다 보니 오히려 저의 믿음이 성장하게 됐죠.”

 

어떤 미래 비전을 갖고 있는가.

“크리스천으로서 찬양 사역자로 계속할 것 같아요. 대한민국에 700여 명이 넘는 탈북민 목사들이 계시고 또 300개가 넘는 개척교회가 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찬양 사역자는 몇 명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앞으로 통일이 돼도 북한으로 가서 찬양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그런 찬양 사역자가 되는 것이 제 비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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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앞날에 대해 겁내지 말고 도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항상 자신을 믿고, 또 믿음이 있는 분들은 하나님이 역사하심을 믿고, 열심히 노력하면 원하는 결과들을 얻을 수 있다 생각해요. 그리고 가고자 하는 길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분야에서도 이뤄질 수가 있으니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하길 바라요. 믿음을 가지고 노력하면 길은 열리게 되고, 그 길에서 의도치 않게 자신의 능력을 쓰임 받는 날이 반드시 올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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