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탈주민 공동체가 길러내는
북한출신 한국시민
김명철 연구원
북한이탈주민 공동체가 길러내는
북한출신 한국시민
김명철 연구원
북한출신임을 드러내기 꺼려하는 우리 아이들
2009년 말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법 개정을 위한 세미나가 국회에서 열린 적이 있었다. 그때 여러 조항 개정에 관하여 논의가 있었는데, 북한이탈주민 청소년의 개별적인 교육적 요구에 대응하는 내용의 개별화 교육 조항 도입에 대한 논의 중 통일부 담당자는 ‘일반 학교의 경우 학생들의 익명권 보장 차원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반대 입장을 밝힌 적이 있었다. 일반 학교에서 북한이탈주민 청소년이라는 걸 드러내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상당수의 북한이탈주민 청소년들도 학교에서 자신이 북한 출신이라는 걸 밝히길 꺼리고 있다. 「1주기 탈북청소년 교육종단 연구」에서 확인된 비율을 보면 ‘밝히지 않겠다’라고 응답한 학생은 2011년 66.7%에서 2014년 52.0%, 2015년 58.4%로 점차 줄어드는 경향이 있지만 여전히 50%를 넘어서고 있다. 그 연구들을 살펴보면 출신배경을 밝힐 것인가에 대한 공개 현황이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고, 차별을 당한 경험의 비율도 전반적으로 낮아졌다고는 한다(한만길, 2019).
그러나 북한이탈주민 청소년들이 ‘북한 출신’이라는 사실을 숨기려는 이유가 우리 사회에서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인 것을 생각할 때, 남북관계의 정치적 영향이 인식과 차별 경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 인식과 경험은 언제든지 다시 높아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언제까지 탈북자인건가요
북한이탈주민 청소년에 대한 교육은 입국 초기 하나원 재원 기간 3개월 동안 기초학습지도와 심리적응 치료가 중심이 된다. 하나원 거주기간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은 인근에 있는 삼죽초등학교에서 특별학급을 설치하여 운영하고, 중고등학생 청소년 대상으로는 하나원 내에 하나둘학교를 운영하여 학업 보충과 사회적응 교육을 하고 있다. 지역사회 정착 초기에는 일반 학교로의 편입학 준비과정을 중시하는 한겨레중고등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이후 부모 또는 본인의 거주지 일반 학교에 진학하는데 북한이탈주민 청소년 다수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특별학급을 운영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반교육과정과 별도로 대안교육기관인 여명학교와 같은 학력인정기관이나 그 외에 비인정 대안교육시설에 다니고 있는 상황이다.
그 과정에서 정착 기간이 오래되어 적응에 별문제가 없는 북한이탈주민 청소년도 지원정책 과정에서 북한이탈주민으로 분류되면서 지속적으로 다시금 ‘탈북자’임을 되새기게 된다. 학생을 가르치는 담당 교사는 성실하고 사회성도 우수한 학생을 ‘특별지원하는 것이 오히려 학교생활에 방해가 된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정부 주도의 특별한 보조를 하는 지원정책은 일반 학교에서 청소년이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신분이 노출되면서 차별과 왕따의 대상이 되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차별과 차별 : 제3국 출생 청소년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법에서는 북한에서 출생한 북한주민만 보호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어서 법률에 따른 지원 대상에 제3국인 중국 등에서 태어난 북한주민의 자녀들은 보호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중국에서 태어난 자녀와 북한이탈주민이 함께 입국하더라도 정착지원금은 자녀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는다. 반면 북한에서 태어난 아이라면 부모인 북한이탈주민과 함께 모든 지원을 동일하게 받는다.
결국 제3국에서 태어난 북한이탈주민 청소년들은 직행으로 온 경우와 달리 일부 교육지원만 받는 실정이다. 그래서 똑같은 북한이탈주민 청소년¹인데 어디에서 태어났는지에 따라, 정부지원을 달리하고 있어서 불합리한 차별이 생겨나고 있다. 그런데 중국에서 태어난 북한이탈주민 청소년의 경우, 부모가 중국에서 경제적인 능력을 갖고 있지만 한국에서의 교육이나 안정적인 신분(국적)을 이유로 입국한 경우도 많아서 거꾸로 일반 학교에서 ‘난 중국에서 왔고, 쟨 북한에서 왔어’라고 하며 북한출생 청소년과 구분 짓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더 두터운 보호가 필요하기도 할 텐데, 또 다른 구분 짓기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안타깝다. 향후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법에서 이를 구분 짓고 있는 입법태도도 고쳐져야만 할 것인데, 북한이탈주민 공동체 안에서조차 구분 짓기가 나타나는 모습은 매우 우려스럽다.
선별적 지원이 아닌 북한이탈주민 공동체의 지지로
북한이탈주민 청소년들 중 많은 사례가 복잡한 가족관계로 인하여 안정적인 교육지원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특성화학교나 대안학교 등의 기숙형 학교와 같은 별도의 분리된 공간에서 그들에게 적합한 별도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도움은 안정적인 정착과 성장에 필요하지만, 그 기간이 결코 장기화 되어서는 안 된다. 분리 교육은 장기화될수록 한국사회에 적응이 지체되고 배제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북한이탈주민 청소년들도 남한학생과 어울리면서 사회적응을 연습하는 경험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20대가 되어 한국 남자들 대부분이 거치게 되는 군 생활도 이제는 본인이 원하면 선택할 수 있도록 바뀌었기 때문에, 입대를 할 수 있다면 입대를 하도록 권한다. 군 생활을 하면서 갖게 되는 공통적인 경험과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인간관계는 사회인으로 살아갈 때 큰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북한이탈주민 청소년에게 적절한 보호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성인으로 성장했을 때 사회인으로서 부딪치게 될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자신감을 길러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한 환경은 정부의 교육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남한출신 학생들이 지역사회에서 받는 지지를 대신할 만한 북한이탈주민사회의 지지와 연결이 필요하다. 그러한 북한이탈주민 공동체의 지지 속에서 북한이탈주민 청소년들이 일반 학교에서 성장해나갈 필요가 있다. 그러한 지지 속에서 북한이탈주민 정체성이 숨겨야 하고, 청산해야 할 것이 아니라, 북한사회를 경험한 한국시민으로서 살아가는 자산으로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정착하지 못하고 또 새 출발을 고민하는 우리 아이들
탈북청소년 그룹홈을 운영하는 어떤 선생님은 ‘탈북청소년은 항상 ’새 출발’을 하려고 합니다. 한 곳에서 지속적인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고 늘 새로운 곳에서 ’새 출발’을 통해 삶의 계기를 마련하려고 합니다.’라고 설명하며, 많은 북한이탈주민 청소년들이 한 곳에 뿌리내리기 힘들어 늘 새로운 곳으로 옮겨 다니다 영원한 ‘난민’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고 한다. 늘 새롭게 다시 시작하기보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 합리적인 권위는 인정하면서 문제를 해결해보는 경험을 가질 수 있어야,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을 거라는 당부였다.
한겨레학교나 대안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에게 이전에 다른 학교에 다닌 경험이 있는지 물어보니, 한겨레학교 학생의 14.9%, 대안학교 학생의 31.8%가 학교를 옮기게 되었다고 답하였다. 그 주된 이유는 학업 부진으로 일반 학교 적응이 어렵거나 부모와 동거하기 어려운 형편에 있어 북한이탈주민 청소년들을 위하여 분리된 기숙형 학교를 선택하였다고 한다(한만길 2019).
특히 기숙형 학교나 그룹홈에 입소하는 북한이탈주민 청소년 상당수는 한부모 가정이나 해체가족, 교육포기, 학대, 방치 가정의 청소년인 경우가 많다. 이미 한 차례 탈북과정에서 가족의 해체를 경험한 청소년이 다시 기숙형 학교나 그룹홈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른 시설을 찾아 이동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 그룹홈 운영자분들의 이야기이다.
북한이탈주민 청소년 문제를 품는 북한이탈주민 공동체
대안학교와 그룹홈 담당자들에게만 북한이탈주민 청소년을 붙잡아 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대안학교가 속한 지역사회와 협력하여 그들이 학교 안에서 문제를 해결해가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함은 물론이고, 해체가정의 북한이탈주민 청소년들을 품으려는 북한이탈주민 공동체의 노력도 필요하다.
해체가정의 북한이탈주민 청소년들이 자신을 지지해주는 어른을 찾지 못하고, 매번 ‘새출발’을 선택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한이탈주민 공동체 안에서 위기의 청소년들을 품고, 그 안에서의 문제해결과 성공경험을 공유하게 된다면, 이는 비단 북한이탈주민 청소년만의 문제해결이 아니라 북한이탈주민 공동체의 건강한 성장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북한출신 한국시민을 키워내는 북한이탈주민 공동체
지난 2000년대 초부터 많아진 북한이탈주민 청소년 문제를 지금까지는 정착지원 대상으로 지원정책과 교육정책 안에서만 고민해왔다. 그런데 20여 년이 흐른 지금 특례입학으로 대학에 입학한 북한이탈주민 학생 중 얼마나 정규과정을 졸업하고 상급학교로 진학하였는지, 사회의 좋은 일자리로 취업하였는지 정확한 통계는 체계적으로 된 조사가 없어 알 수 없다. 하지만 입학한 청소년 중 상당한 수가 자퇴나 장기휴학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을 위한 진지한 고민과 사회적 지지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북한이탈주민 사회도 각자의 정착 문제로 북한이탈주민 청소년을 돌아볼 여유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이탈주민이 북한 출신의 한국시민으로 온전한 사회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나, 향후 북한과의 평화적인 관계가 정착되어 북한지역에서의 경험을 건강한 자산으로 삼아 발돋움하기 위해서라도 북한이탈주민 청소년들을 그 정체성을 유지하며 건강한 한국시민으로 키워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노력은 정부 당국의 지원정책에 기댈 것이 아니라 북한이탈주민 사회 스스로 정체성을 발휘하며, 공동체적 지지를 만들어 청소년들을 먼저 돌보려는 노력이 시작되어야 할 때이다.
1. 이 글에서는 중국에서 출생했든, 북한에서 출생했든 그 부모가 북한이탈주민으로 남한 사회에 정착하고 있다면, 그 자녀로서 남한 사회에 부딪히는 모습은 공통적인 것이 더 많기 때문에 그 공통점에 주목하고자 그 둘을 모두 묶어서 ‘북한이탈주민 청소년’이라고 부른다.
한만길, 북한이탈주민 청소년 교육 : 언제까지 분리교육인가, 「배제와 통합 : 탈북인의 삶」, 2019
한국교육개발원, (1주기, 2주기) 탈북청소년 교육 종단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