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철 사회적 기업 행복나래 매니저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이끌었던 북한 출신 회장들처럼,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어요”
글 한대의 | 사진 최승대
북한이탈주민이라면 사회 진출이 그 어떤 분야보다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자영업을 하던,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직업적으로 모두가 다 힘들지만, 특히 한국 사회에서 거대 기업의 회사원으로 일한다는 것은 인내와 끈기가 상당히 요구되는 부분이다.
일개 사원으로 시작해 처음부터 차례차례 배우며 올라가는 진급의 길은 높고도 멀다.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진급의 ‘유리천장’이 있다면, 한국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편견의 높은 벽이 있다. 이는 ‘남녀갈등’의 골보다도 더 깊고, 더 넓게 다가온다. 이를 어떤 지혜로 뚫고 나가느냐는 각자의 몫일 터지만, 그래도 오랜 기간 큰 조직들에서 버텨 온 사람들이 있으니 자랑할 만한 모습이다.
이런 북한이탈주민 중엔 SK가 설립한 ‘사회적 기업 행복나래’에서 6년 차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김동철 씨도 있다. 노코인사이트는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으며 조직과 함께 성장하는 김동철 씨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김 매니저는 함경남도 단천 출신이다. 30대 초반의 그는 2009년 대한민국에 입국했다. 건국대학교에서 학사를 마친 그는 졸업과 함께 사회적 기업인 행복나래로 입사한다. 행복나래는 SK가 설립한 구매 서비스 회사로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고 연결해서 소셜 밸류(Social Value)를 창출하는 일에 이익의 전액을 사용하는 회사이다. 간단히 말해, 대기업이 사회적 기업을 도와주기 위해 만든 하나의 파트라는 의미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2017년에 행복나래에 입사했었죠. 사회적 기업이라고 하지만 저희 회사는 반도체, IT, 에너지, 화학, 건설, 물류 등 주요 산업분야에서 고객사의 구매 비용을 낮추고,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구매 서비스 사업을 하기 때문에 전문지식이 필요한 분야에요. 물론 저도 대학에서 공부를 했지만 입사 후 처음엔 전문분야 지식을 습득하느라 조금은 힘들기도 했었어요.”
“설비와 자재, 각종 부품들에 대해 모두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하나의 업무를 완전히 파악하는데도 많은 시간이 들죠. 특히 저희 회사는 각기 다른 회사들에서 구매 담당자가 필요한 자재나 부품을 주문하면 이를 제공해 주고 서비스를 하는 분야라 해당 파트마다 전문성이 필요해요. LG,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들도 저희와 같은 회사들이 있었지만 현재는 SK가 유일하게 남아 이 분야에서 기업들에게 서비스하고 있죠.”
김 매니저는 지금까지 회사 생활에 적응하며 힘든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고 했다. 회사에 들어가 하나의 새로운 조직의 구성원이 돼야 하는 부담감은 늘 존재했다. 조직에 잘 융합되는 것만이 조직과 나를 위해 다 좋은 것이었지만 마음처럼 되진 않았다.
“일을 시키려고 해도 새로 들어온 신입들이 회사를 잘 파악하고, 해당 팀에 잘 녹아들어야 지시하는 사람도 편하죠. 조직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면 일을 시키는 사람도 불편해요. 그래서 입사 이후 저도 소통을 잘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신뢰 또한 소통이 바탕이 돼야 하는 부분이라 많은 시간이 들었죠. 그렇게 회사와 팀에 잘 녹아들기 위해 노력하다 어느 시점이 되니 비로소 우리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자격이 갖춰지더라고요.”
“보통 회사에 입사하면 아무 일이나 하라고 먼저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허드렛일을 시키면서 쭉 지켜보죠. 이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지켜보는 과정이 있는데, 그 과정을 처음엔 잘 이겨내야 했어요. 솔직히 좀 힘들었죠.”
“특히 회사에선 제가 북한에서 왔고, 특채로 들어오니 조금 낯설게 보는 부분도 분명히 있었죠. 다들 경쟁으로 힘들게 들어온 터라 신경전은 항상 존재했어요. 시기와 질투도 있었고, 밀어내려고 하는 행동들도 많이 보였죠. 그런 과정을 잘 이겨내고, 조직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아요. 이젠 업무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위치까지 올라왔고, 익숙해지니 회사에서도 신뢰를 주고 한 식솔처럼 받아들여주죠. 맡은 업무도 오랜 기간 해왔기에 능숙하다고 봐야죠.”
최근 김 매니저는 한 단계 더 나은 성장을 위해 자기계발을 하고 있다. 관련 분야에 필요한 자격증과 외국어 능력 향상을 위해 또다시 배움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그는 이런 준비과정을 통해 인정받을 때 또 한걸음 성장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국에 정착한 기간이 짧은 10·20대 청년들에게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 한국에 발을 내딛은 이상 힘들더라도 표준말을 쓰기 위해 노력하길 바라요. 그것이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서가 아닌, 상대방의 이해를 돕고, 이 사회를 빨리 습득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길이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에게 친밀감 있게 다가가거나, 친구를 만날 때에도 언어적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 생각해요.”
“그리고 다음으로 전문성이에요. 일에는 귀천이 없지만, 그래도 평생 일하면 살려면 기술직을 하는 것이 인생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죠. 전문성이 있으면 그 어떤 사회에서도 인정을 받아요. 따라서 될수록이면 대학을 다니고, 힘들더라도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의 전문성을 키우기 바라요. 혹여 북한에 있는 부모님이나 형제를 데려온다던가, 급한 돈이 필요해서 몸으로 때우는 일을 하더라도, 나중의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기술직이나 이런 곳으로 가는 게 오래, 그리고 멀리 가는 방법이에요. 너무 새겨듣지는 마세요.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니 그냥 참고용으로만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김 매니저는 현재의 회사 또한 미래 사업을 위한 발판이 될 것이라 말했다. 1세대인 청년 사업가들이 대한민국 국민으로 잘 정착해서 안정적인 생활을 해나갈 때 사회의 중추적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는 오늘도 꿈을 그린다. 국내 기업들의 유통과 서비스 분야에 대한 폭넓은 인식을 누구보다 더 많이, 더 빨리 습득하기 위해 노력한다. 대기업의 시스템을 배우고, 이를 구현한 김동철만의 기업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 김 매니저의 꿈이다. 꿈은 실현되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가 꿈을 꿔야 북한이탈주민도 이 나라의 경제인으로 더 많이 생겨날 것이다. 과거 대한민국의 경제를 일으켜 세웠던 북한 출신의 정주영 회장과 같은 북한이탈주민 사업가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