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이탈주민 공동체의 힘과 과제
Peter Ward 연구원
북한이탈주민 공동체의 힘과 과제
Peter Ward 연구원
귀순자, 탈북자, 새터민 등 윗동네에서 온 사람들은 한국에서 여러 명칭으로 불린다. 말은 그저 소음이 아니라 각별한 뜻과 정치적 의미를 전하기 때문에 결코 사소한 것으로 생각할 수 없다. 이름은 곧 힘과 권력이 될 수 있으며, 거꾸로 탄압과 고통의 원인도 될 수 있다.
북에서 ‘양반’이라는 이름은 원래 귀족으로서 높은 지위를 갖고 있었지만 이후 반동분자를 부르는 말이 되었고 소련 출신 ‘간부’는 세계 혁명의 기원에서 문명을 학습한 간부 ‘귀족’으로서 활동하다 이후에는 반당 반혁명분자로 숙청되었듯이 말은 곧 정체성이다.
그렇다면 ‘북한이탈주민’이라는 말로 불리는 이들의 공동체는 어떤 상황일까? 현재 한국 사회에서 북한이탈주민은 매우 특수한 위치를 차지한다. 한편으로는 정치적으로 매우 강한 입지와 사회적으로 조직화된 입지를 갖고 있고, 또 한편으로는 경제적으로 취약한 입지이기도 하다.
북한이탈주민에 관한 연구를 보면 사회 적응 문제, 경제적으로 취약한 위치, 취업 문제, 사회복지 문제 등 여러 부정적인 측면이나 극복해야 할 점이 나오지만, 동시에 북한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북한이탈주민이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또한 현재 한국에서도 비교적 큰 힘을 갖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현재 대한민국 국회에서 북한이탈주민 출신 국회의원은 두 명이다. 북한 전체 인구는 공식적으로 대략 2천 5백만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대한민국 국회 안에서 북한 주민의 입장을 대변할 국회의원의 비율은 매우 낮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 주민은 직접 선거에 출마할 수 없고 선거권을 행사할 수도 없기 때문에 북한 주민 전체 인구보다는 북한이탈주민의 전체 인구로 비율을 따지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현재까지 북한이탈주민의 수는 대략 3만 명 정도이다. 이 북한이탈주민 3만 명이 예를 들어 ‘북향도’라는 특정 지방의 사람이라고 생각해 보자. 그렇다면 전체 인구 1만5천 명 당 국회의원 한 명이 있다는 소리다. 이것은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같은 다른 지역에 비해 압도적으로 큰 비율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소위 ‘글로벌 시대’에 세계 무대에서 북한이탈주민 공동체 이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한국의 다른 지역은 없을 것이다.
정치적으로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북한이탈주민의 힘은 강해지고 있다. 남북하나재단의 2021년 사회통합조사를 보면 북한이탈주민 공동체는 고령사회인 전체 한국 인구보다 평균적으로 젊고 대다수는 수도권 살고 있으며 일반 한국인과 비슷하거나 더 튼튼한 사회적 관계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이탈주민 중에서 건강 문제, 금전 문제, 심리 문제가 있을 경우,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대부분이거나 최소 50%(금전의 경우)이다.
북한이탈주민이라면 마냥 취약계층으로만 보던 사람들에게 이런 사실은 놀라운 것일 수도 있지만 북한이탈주민 공동체의 구성을 보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북한이탈주민 사회는 일종의 정착 지원 단체나 교회와 같은 결사체의 성격을 띤다. 즉 조직화된 사회적 자본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북한이탈주민 공동체는 북한이탈주민 개개인이 정치적으로 참여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힘이기도 하고 공동체 응집력과 서로를 도와주는 역할도 할 수 있다. 이 공동체 안에서 선후배 간의 조언과 도움을 주고받기도 한다.
이처럼 북한이탈주민들이 지금까지 정계와 사회에서 활동을 해온 모습을 보면, 북한이탈주민 공동체의 정치적∙사회적 잠재력이 지속적으로 부각되고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매우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앞으로 해야 할 일 중의 하나는 무엇보다도 정체성의 설정인 듯하다. 동아시아연구원·성균관대 동아시아 공존·협력 연구센터·중앙일보 공동 한국인의 국가정체성 조사 (2020)의 결과에서 잘 볼 수 있다.
<표 1> 탈북민, 조선족, 북한 주민에 대한 인식(2020년 조사) (단위: %)
완전 남이다 | 남에 가깝다 | 대한민국 국민에 가깝다 | 대한민국 국민이다 | |
---|---|---|---|---|
탈북민 | 8.0 | 31.1 | 51.4 | 9.5 |
조선족 | 12.9 | 47.1 | 36.8 | 3.3 |
북한 주민 | 13.5 | 46.7 | 35.0 | 4.9 |
출처: 강원택 (2020)
이 조사에서 북한이탈주민은 다른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같은 국민 혹은 국민과 가까운 존재로서 수용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하지만 이것은 한국 사회에서 점차 북한이라는 나라가 외국(별개의 독립적 국가)으로 인식되어가고 북한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 즉 북한이탈주민은 곧 귀화한 외국인의 ‘노릇’을 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남북통일이라는 기존의 틀 속에서 북한이탈주민의 사회적∙정치적 힘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한민국 국민에 가까울수록 힘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사실, 대한민국은 남북 간의 단일민족론이 점차 사라지고 남한으로서 한국 민족의 독자적 정체성과 다문화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이탈주민이 실향민처럼 ‘한국 민족’으로 희석되고, 탈북 2세, 3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북한 출신 한국인이 아니라 서울, 경기도, 부산 출신의 한국인으로 인식할 가능성도 높다. 또한 흔히 ‘성공한 탈북민’이라 불리는 이들은 사회 진출을 잘할수록 기존의 북한이탈주민 공동체를 떠나 자신과 비슷한 경제 수준의 남한 출신 한국인과 더 친밀해질 공산도 적지 않다.
이처럼 공동체 차원에서 정치적∙사회적 힘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그 안의 개개인은 한국에서 살기 좋아지고 성공하게 될수록 공동체의 정체성과 멀어진다는 북한이탈주민 공동체의 역설을 앞으로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앞으로 북한이탈주민을 대표하는 정치인들과 사회적으로 북한이탈주민 공동체를 대변하는 사람들이 북한이탈주민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를 현명하게 이끌어 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