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버 겸 방송인 북미남 박유성
“일단 시작해야해요.
언젠가 내 노력에 합당한 파도가 덮칠 거예요.”
글 임지현 | 사진 최승대

'북한남자'와 '북미남'으로 유명한 박유성씨, 그의 고향은 함경남도 회령이다. 그는 북한에서 여느 아이들처럼 천진스러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고등학생 때 아버지가 탈북했다는 이유로 감시 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면서부터 더 이상 이전과 같은 평범한 생활을 이어갈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고등학교 졸업 후 곧장 군입대를 해야 했고, 몸이 편찮으셨던 어머니를 홀로 두고 갈 수 없어 한국에 정착해 계신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그 후 그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어머니와 함께 강을 건너 2008년에 한국으로 오게 됐다.
청소년기에 한국으로 넘어온 그에게 정착은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부정적인 주변 시선이 두려워 처음엔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을 숨겼다. 그런 그를 세상에 나오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소통'이었다.
"초반엔 언어가 제일 힘들었어요. 언어의 장벽을 넘어 대한민국 사회의 일원이 되는 게 어려웠죠. 배워야 할 것들이 참 많았는데, 언어부터 시작해서 그 모든 것을 제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누군가는 빠르게 습득하고 적응하기도 하잖아요. 반면에 10년이 지나도 그대로인 사람도 있고요. 노력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주변 사람들을 더 적극적으로 만나 대화하기 시작했어요."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과 본인의 고향을 밝히는 것까지 망설임 없이 행했다. 그렇게 대한민국 사회의 일원이 되기까지 5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대학교를 졸업할 즈음 사회적 울타리를 어느 정도 형성했다고 생각했어요. 마음의 자립도, 경제적 자립도 시작했죠. 그렇게 한국에 들어온 지 3~4년쯤 됐을 때, '아, 이정도면 정착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에 나온 그가 선택한 또 하나의 소통창구는 '방송'이었다. 학생 때부터 서너 번 출연한 <이제 만나러 갑니다>를 시작으로 남한사회와의 소통의 장을 본격적으로 넓혀갔다. 유튜브 채널도 개설했다. 1인 미디어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개설 후 2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10여만 명의 구독자가 모였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대중과 이야기하기 위한 그의 1인 미디어 행보는 유튜브가 처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2016년인가, 북에서 온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얘기가 너무 재밌어가지구요.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녹음해서 방송해보자'는 말을 시작으로 친구들과의 대화를 팟빵(디지털 오디오 콘텐츠 시장)에 올려보기 시작했어요. 북한에 대한 대중의 무거운 이미지를 조금이라도 탈피해보고 싶었습니다. '북남 북녀의 새빨간 이야기'라는 채널인데, 어느 방송국 피디님이 듣고는 처음 방송 출연 제의를 해주시기도 했죠."
수백 명의 구독자와 '좋아요'를 가진 그의 첫 행보는 아직까지도 팟빵에서 만나볼 수 있다. '학창시절편', '대학생활편', '연애편' 등 가벼운 주제로 구성된 이 방송은 북한에서 경험한 여러 에피소드와 가벼이 던지는 농담들로 매회차마다 재미와 웃음꽃이 끊이지 않는다. 수년 전부터 1인 미디어의 길에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은 그만의 '도전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작하는 건 뭐든 좋다고 생각해요.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부단히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문을 두드리고, 가능성이 희박해도 찔러보고, 제안해보고, 도전하고, 때로는 제 자신을 계속 다그치기도 했죠."
'해볼까?'라는 물음에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무엇이든 두드려보았으며 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첫 1인미디어 채널 설명란에 이렇게 쓰여 있다. '기획 의도:남북한의 문화차이를 줄이고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남북청년의 진솔한 이야기'. 박유성씨는 지금까지 그 방향성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북한'에 대한 단편적인 이미지, 언론이 조명하는 편향된 모습을 깨고 대중의 생각의 범위를 확장시키고자 한다. 심오하거나 아픈 이야기를 주로 다루는 기존 틀에서 벗어나고자 가볍게 볼 수 있는 콘텐츠들을 기획,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유튜브 운영 초반에 방송 컨셉을 '가벼움'으로 잡기도 했다.
"사회에서 밝게 살아가는 모습을 많은 사람한테 보여주고 싶어요. '북한에서 온 사람들도 재밌게 사는구나'라는 인식이 들게끔 있는 그대로 즐거움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의 삶의 모토도 콘텐츠의 방향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밝고 명랑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박유성씨도 방송활동 중에 크고 작은 난관을 적잖게 만났다.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 기술적인 문제나 금전적 관계, 불안정한 상황을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주저앉지 않았다. 현재는 '북미남'이라는 이름의 새 채널을 개설해 본인만의 나침반을 가지고 전진하고 있다.
"'에이, 모르겠다'며 난제들을 무조건 걷어치우다 보면 꿈에서 멀어지기 마련이잖아요. 좌절할 때마다 이렇게 되새깁니다. '기회가 또 오겠지'. 그렇게 다른 곳에 다시 집중하고, 또 다른 길을 찾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는 우직한 소나무와 같은 자세로 '때마다 잘 버티고, 견디고, 이겨내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처럼 장애물을 만나는 이들, 사회 정착에 어려움을 겪거나, 방송을 꿈꾸는 이들에게 이 메시지를 전한다.
"버텨야 해요. 힘든 시간을 무작정 버틴다는 개념이 아니라, 내일을 위해 준비한다는 생각으로 지내면 좋겠습니다. 오늘을 열심히 살아보세요.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서 살고, 그렇게 버티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삶에 그에 합당한 파도가 덮치거든요. 그때 알게 될 거예요. '내가 이걸 위해 그렇게 고생했구나'. 이 거대한 감정을 느낄 때까지 버티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고 뭐가 됐든 일단 시작해보세요. 잘 되든 안 되든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면 좋겠고, 최선을 다했다면 그 자체에 만족하면 좋겠습니다. 방향성이 있다면 일단은 시작하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일단 시작하라'는 당부를 전하는 박유성씨는 최근 또 하나의 새로운 길에 들어섰다. 북한학 외교부문을 배우기 위해 대학원에 입학했다. 북한에 대한 콘텐츠를 제작할 때, 단순히 북한에서 살았다는 경험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 전달하기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고자 내디딘 첫발이다. 이후 어떤 길목을 걷게 될지 모르지만, 남북 개선을 위한 나만의 역할을 찾아 '문화의 통로'가 되고자 하는 꿈을 갖고 하나하나 차근히 다져가고 있다. 본인의 목소리를 키우고 입지를 다지기 위해 그는 오늘도 두드려보고 도전하고 있다. 박유성씨를 포함한 많은 북한이탈주민의 꿈을 향한 두드림이 선한 영향력으로 한국 사회를 가득 채우기를 바라며 인터뷰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