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소설이 자소서가 되기까지,
외로움 그리고 그리움


기자 하지현

자소설이 자소서가 되기까지,
외로움 그리고 그리움


기자 하지현

누구나 한 번쯤 인생을 살면서 무엇인가를 간절하게 바랬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갓 대학생이 된 나로서는 그게 대학교 입시였던 것 같다. 고3이 되면서 나와 내 친구들은 같은 길을 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다른 길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들 알다시피 우리의 입시에는 일명 ‘특혜’라는 것이 있고, 다른 아랫동네 친구들보다 대학의 벽을 넘기가 훨씬 수월하다. 하지만 그만큼 준비해야 하는 서류나 대학별로 써내야 하는 자소서와 면접 준비로 많은 어려움에 부딪힌다.


입시 준비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바로 자소서를 쓰는 것이었던 것 같다. 아마 입시를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나를 어필하는 글을 쓰는 것이어서 정말로 막막했던 것 같다. 카페에서 한글 파일을 열어놓고 하얀색 페이지를 보면서 도대체 여기에 무얼 써야 할지 몰라 머리를 쥐어짜고 있던 나의 모습이 아직도 정말 생생하게 기억난다. 정말이지 지금 생각해도 막막하다.



이상하게 자소서는 낮보다는 밤에 훨씬 더 잘 써졌다. 낮에 분명 3~4시간 동안 카페나 집에서 쓸려고 안간힘을 써도 잘 안 써지던 것이 밤만 되면 좀 써졌던 것 같다. 밤이 되면 뭉글한 감수성과 나 자신에게 좀 더 솔직해지는 감정이 들어서 그랬던 것 같다. 밤에 잔잔한 음악을 틀어 놓고 진심을 담아서 자소서를 쓰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런 방법을 통해서 대학을 가도 되나?’, ‘나는 한국에서 초중고 교육을 다 받았는데 내가 이 혜택을 받을 자격이 있나?’라는 생각이 멈추지 않아 마음의 경련이 일어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은 더욱더 나에게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무한의 감사함을 느끼게 했다.


밤새워 자소서를 쓰느라고 힘들어하던 시간들과 카페에 앉아서 흰색 화면을 보면서 '내가 이걸 다 쓸 수 있을까?' 하면서 까마득해 하던 순간들이 정말 안 갈 것만 같았는데 시간은 어느새 많이 지나가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과연 글을 완성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매일 들었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자소서를 제출하는 날에 흰색만 가득했던 바탕에 어느새 검은색 글씨들이 가득하게 써져있다는 것이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지금도 그 신기한 경험은 계속하고 있다. 대학 와서 강의계획서를 보면서 ‘아,, 저 팀플은 어떻게 하고 저 과제는 어떻게 해내야 하지!!’라는 막막함이 있는데 한 학기를 끝나고 나면 그 모든 것을 해낸 나 자신을 발견할 수가 있다.


자소서를 다 쓰고 나면 원서접수를 해야 하는데 그것도 정말 복잡했던 것 같다. 나 같은 경우는 필요한 서류들을 미리미리 준비해 놓지 않고 급하게 준비하느라 더 정신이 나갔던 것 같았다. 대학 와서 내가 만난 친구는 자기는 3월부터 전년도 입시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필요한 서류들은 미리 준비해서 좀 더 수월했던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반성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년에 입시를 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필요한 서류들을 나처럼 급하게 준비하지 말고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을 추천한다!!!



원서 접수를 하고 자소서를 다 제출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바로 그다음 단계인 면접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일반학교를 다니다 보니 우리 쪽 입시에 대해서 정보가 별로 없었고, 혼자서 준비를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면접에 나올만한 어떤 것들이 나올지 몰라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질문지를 만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다이소에서 삼각대를 사다가 혼자서 질문하고 답하는 식으로 면접 연습했었다. 다른 친구들이 수능 공부할 때 혼자서 면접 준비를 하고 있자니 정말이지 외로웠는데 오히려 친구들은 면접 준비를 하고 있는 나를 부러워하곤 했다.(항상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오면 나와 다른 상황에 있는 사람이 부러워지는 것 같다ㅎㅎ )


면접 전날에는 정말 잠이 안 왔다. 분명 눈을 감고 잤는데 눈을 뜨고 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처음 면접을 보러 갔던 날 엄마가 학교 앞까지 데려다주시면서 했던 말이 떠오른다. ‘나는 윗동네에서 21살에 결혼해서 22살에 애 낳았는데 우리 딸은 이제 이쁜 대학생이 되네’라고 말을 하던 엄마의 얼굴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만약 엄마도 위쪽 동네가 아닌 아랫 동네에서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보냈다면 나에게 말해줄 이야기가 많지 않았을까?’라는 생각과 또 ‘엄마의 젊은 시절은 얼마나 아름답고 빛났을까!’라는 안타까운 마음과 애틋하고 왠지 모를 서러운 마음까지 들었던 것 같았다. 복잡한 마음으로 면접을 다 보고 나오는 길에 펑펑 울었다. 나도 그날 내가 왜 울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후련한 마음과 면접을 잘 보지 못했다는 생각으로 엄마한테 미안한 마음과, 또 다른 알 수 없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그랬던 것 같다.

   

내가 결과를 기다리며 편하게 놀고 있을 때쯤 나는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눈에 받았다. 나에게 와 힘들어 죽을 것 같다고 말하는 친구부터 2달 동안만 자신과 영혼을 바꾸자고 하는 친구, 그리고 나에게 와 그냥 망한 거 혜택을 받기 위해 자신도 이참에 위쪽 동네 한번 갔다 오겠다고 농담하며 말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친구들이 하소연을 하면서 나에게 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볼 때면 나는 다 끝난 자의 여유로움을 장착하고 살짝 거들먹거리면서 이야기를 했다.(거들먹거리다는 것은 하다가 친구가 살짝 삐져서 그리 많이 해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극도에 긴장감과 두려움을 주는 날짜들이 있었다. 바로 대학교 합격자 발표 날이었다. 합격자 발표가 있는 날이면 손에 아무 일도 잡히지 않았다. 하루 종일 대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새로고침을 하면서 빨리 발표가 되기를 기다리면서도 정작 발표가 되면 손이 떨려 확인하기를 망설이던 나의 모습이 기억이 난다. 발표를 기다리면서 설마 여섯 곳 다 떨어지겠어 제발 제발 한 곳이라도 붙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다. 정말이지 그때가 아마 내 인생에서 기도를 가장 많이 했던 것 같았다(그냥 눈을 감고 ‘제발’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두 손을 꽉 쥐고 속삭였던 것 같다) 


‘축하합니다’라는 글과 함께 합격이라는 글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엄마였다. 입시 준비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엄마한테 짜증도 많이 내고 어리광도 많이 부리고 했지만 엄마는 언제나 나를 응원해 주었고 나의 편이였다. 그런 엄마가 옆에 있었기에 나는 잘 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엄마와 함께 저녁에 축하 파티를 하면서 나는 엄마에게 그동안 미안했다고 말했다. 엄마는 ‘뭘 새삼스럽게 그러냐고, 짜증 낼 건 다 내놓고 미안하다고 하느냐고’ 농담 삼아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도 위쪽에 계시는 외할머니 할아버지가 알았다면 정말 기뻐하셨을 텐데 못 알려드려서 아쉽다고 하셨다. 나도 같은 감정이 들어 기쁘고 행복했지만 씁쓸한 감정이 들었다.


엄마의 소원은 죽기 전에 자신의 고향에 가보는 것이라고 했다. 엄마는 ‘사람은 늙으면, 나이가 들수록 자신이 떠나온 곳이 그리워진다’고 술을 드시면 항상 나에게 이야기를 하곤 했다. 나도 그렇다. 내가 어릴 적 떠나온 그곳이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정말 기쁘거나 좋은 일 그리고 슬픈 일이 생기면 그곳에 있는 나의 가족들이 생각난다. 나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그곳에 있는 나의 가족들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지는 못하지만 언젠가는 함께 나눌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그런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자소설이 자소서가 되기까지,
외로움 그리고 그리움


기자 하지현

누구나 한 번쯤 인생을 살면서 무엇인가를 간절하게 바랬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갓 대학생이 된 나로서는 그게 대학교 입시였던 것 같다. 고3이 되면서 나와 내 친구들은 같은 길을 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다른 길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들 알다시피 우리의 입시에는 일명 ‘특혜’라는 것이 있고, 다른 아랫동네 친구들보다 대학의 벽을 넘기가 훨씬 수월하다. 하지만 그만큼 준비해야 하는 서류나 대학별로 써내야 하는 자소서와 면접 준비로 많은 어려움에 부딪힌다.


입시 준비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바로 자소서를 쓰는 것이었던 것 같다. 아마 입시를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나를 어필하는 글을 쓰는 것이어서 정말로 막막했던 것 같다. 카페에서 한글 파일을 열어놓고 하얀색 페이지를 보면서 도대체 여기에 무얼 써야 할지 몰라 머리를 쥐어짜고 있던 나의 모습이 아직도 정말 생생하게 기억난다. 정말이지 지금 생각해도 막막하다.



이상하게 자소서는 낮보다는 밤에 훨씬 더 잘 써졌다. 낮에 분명 3~4시간 동안 카페나 집에서 쓸려고 안간힘을 써도 잘 안 써지던 것이 밤만 되면 좀 써졌던 것 같다. 밤이 되면 뭉글한 감수성과 나 자신에게 좀 더 솔직해지는 감정이 들어서 그랬던 것 같다. 밤에 잔잔한 음악을 틀어 놓고 진심을 담아서 자소서를 쓰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런 방법을 통해서 대학을 가도 되나?’, ‘나는 한국에서 초중고 교육을 다 받았는데 내가 이 혜택을 받을 자격이 있나?’라는 생각이 멈추지 않아 마음의 경련이 일어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은 더욱더 나에게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무한의 감사함을 느끼게 했다.


밤새워 자소서를 쓰느라고 힘들어하던 시간들과 카페에 앉아서 흰색 화면을 보면서 '내가 이걸 다 쓸 수 있을까?' 하면서 까마득해 하던 순간들이 정말 안 갈 것만 같았는데 시간은 어느새 많이 지나가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과연 글을 완성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매일 들었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자소서를 제출하는 날에 흰색만 가득했던 바탕에 어느새 검은색 글씨들이 가득하게 써져있다는 것이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지금도 그 신기한 경험은 계속하고 있다. 대학 와서 강의계획서를 보면서 ‘아,, 저 팀플은 어떻게 하고 저 과제는 어떻게 해내야 하지!!’라는 막막함이 있는데 한 학기를 끝나고 나면 그 모든 것을 해낸 나 자신을 발견할 수가 있다.


자소서를 다 쓰고 나면 원서접수를 해야 하는데 그것도 정말 복잡했던 것 같다. 나 같은 경우는 필요한 서류들을 미리미리 준비해 놓지 않고 급하게 준비하느라 더 정신이 나갔던 것 같았다. 대학 와서 내가 만난 친구는 자기는 3월부터 전년도 입시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필요한 서류들은 미리 준비해서 좀 더 수월했던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반성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년에 입시를 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필요한 서류들을 나처럼 급하게 준비하지 말고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을 추천한다!!!



원서 접수를 하고 자소서를 다 제출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바로 그다음 단계인 면접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일반학교를 다니다 보니 우리 쪽 입시에 대해서 정보가 별로 없었고, 혼자서 준비를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면접에 나올만한 어떤 것들이 나올지 몰라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질문지를 만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다이소에서 삼각대를 사다가 혼자서 질문하고 답하는 식으로 면접 연습했었다. 다른 친구들이 수능 공부할 때 혼자서 면접 준비를 하고 있자니 정말이지 외로웠는데 오히려 친구들은 면접 준비를 하고 있는 나를 부러워하곤 했다.(항상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오면 나와 다른 상황에 있는 사람이 부러워지는 것 같다ㅎㅎ)


면접 전날에는 정말 잠이 안 왔다. 분명 눈을 감고 잤는데 눈을 뜨고 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처음 면접을 보러 갔던 날 엄마가 학교 앞까지 데려다주시면서 했던 말이 떠오른다. ‘나는 윗동네에서 21살에 결혼해서 22살에 애 낳았는데 우리 딸은 이제 이쁜 대학생이 되네’라고 말을 하던 엄마의 얼굴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만약 엄마도 위쪽 동네가 아닌 아랫 동네에서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보냈다면 나에게 말해줄 이야기가 많지 않았을까?’라는 생각과 또 ‘엄마의 젊은 시절은 얼마나 아름답고 빛났을까!’라는 안타까운 마음과 애틋하고 왠지 모를 서러운 마음까지 들었던 것 같았다. 복잡한 마음으로 면접을 다 보고 나오는 길에 펑펑 울었다. 나도 그날 내가 왜 울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후련한 마음과 면접을 잘 보지 못했다는 생각으로 엄마한테 미안한 마음과, 또 다른 알 수 없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그랬던 것 같다.

   

내가 결과를 기다리며 편하게 놀고 있을 때쯤 나는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눈에 받았다. 나에게 와 힘들어 죽을 것 같다고 말하는 친구부터 2달 동안만 자신과 영혼을 바꾸자고 하는 친구, 그리고 나에게 와 그냥 망한 거 혜택을 받기 위해 자신도 이참에 위쪽 동네 한번 갔다 오겠다고 농담하며 말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친구들이 하소연을 하면서 나에게 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볼 때면 나는 다 끝난 자의 여유로움을 장착하고 살짝 거들먹거리면서 이야기를 했다.(거들먹거리다는 것은 하다가 친구가 살짝 삐져서 그리 많이 해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극도에 긴장감과 두려움을 주는 날짜들이 있었다. 바로 대학교 합격자 발표 날이었다. 합격자 발표가 있는 날이면 손에 아무 일도 잡히지 않았다. 하루 종일 대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새로고침을 하면서 빨리 발표가 되기를 기다리면서도 정작 발표가 되면 손이 떨려 확인하기를 망설이던 나의 모습이 기억이 난다. 발표를 기다리면서 설마 여섯 곳 다 떨어지겠어 제발 제발 한 곳이라도 붙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다. 정말이지 그때가 아마 내 인생에서 기도를 가장 많이 했던 것 같았다(그냥 눈을 감고 ‘제발’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두 손을 꽉 쥐고 속삭였던 것 같다) 


‘축하합니다’라는 글과 함께 합격이라는 글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엄마였다. 입시 준비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엄마한테 짜증도 많이 내고 어리광도 많이 부리고 했지만 엄마는 언제나 나를 응원해 주었고 나의 편이였다. 그런 엄마가 옆에 있었기에 나는 잘 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엄마와 함께 저녁에 축하 파티를 하면서 나는 엄마에게 그동안 미안했다고 말했다. 엄마는 ‘뭘 새삼스럽게 그러냐고, 짜증 낼 건 다 내놓고 미안하다고 하느냐고’ 농담 삼아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도 위쪽에 계시는 외할머니 할아버지가 알았다면 정말 기뻐하셨을 텐데 못 알려드려서 아쉽다고 하셨다. 나도 같은 감정이 들어 기쁘고 행복했지만 씁쓸한 감정이 들었다.


엄마의 소원은 죽기 전에 자신의 고향에 가보는 것이라고 했다. 엄마는 ‘사람은 늙으면, 나이가 들수록 자신이 떠나온 곳이 그리워진다’고 술을 드시면 항상 나에게 이야기를 하곤 했다. 나도 그렇다. 내가 어릴 적 떠나온 그곳이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정말 기쁘거나 좋은 일 그리고 슬픈 일이 생기면 그곳에 있는 나의 가족들이 생각난다. 나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그곳에 있는 나의 가족들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지는 못하지만 언젠가는 함께 나눌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그런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CONTACT

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서로 159-1 CBS방송국 14층

T. 02 - 2649 - 0206    E.  info@woorion.org

GET IT TOUCH 

구독해 주시면 새로운 소식을 보내드립니다.

Copyright © WOORION. All rights reserved.

CONTACT

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서로 159-1 CBS방송국 14층

사단법인 통일의 징검다리 우리온 대표 : 박대현 

사업자등록번호 : 678-82-00212

T. 02 - 2649 - 0206

E. info@woorion.org

GET IT TOUCH

구독해 주시면 새로운 소식을 보내드립니다.


         Copyright © WOORIO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