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에서 대학원생으로의
진화과정


기자 HSU

대학생에서 대학원생으로의
진화과정


기자 HSU

4년제 대학에서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나서 진로에 대한 방황을 거의 2년간 한 후 대학원에 진학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대학원에 대한 사전조사를 거의 하지 않은 상태로, 심지어는 대학원에 다니는 선배들에게 조언도 듣지 못한 채로 대학원을 덜컥 가게 되었다. 사실 대학원은 보통 학점이 좋은 사람들이 가는 게 일반적이긴 하다. 학점이 좋다는 것은 학부시절부터 다른 사람들이 놀 때 나름의 고민을 가지고 학점을 열심히 챙기고 연구보조(Research Assistant)에도 기웃기웃 해가면서 대학원 진학을 고민해본 사람들이 보통 대학원을 가는 것 같다. 나는 그런 전형적인 학생은 아니었기 때문에 대학원 진학에 큰 두려움이 있었다. 


학부 1,2학년을 보내면서 심리학 수업 과목자체에 흥미를 느끼기 보다, 나는 취업을 미리 걱정하면서 심리학이라는 전공이 취업시장에서 얼마나 경쟁력이 있는지에 더 관심이 생겼었다. 당시에는 빨리 졸업해서 취업하고 안정적인 경제생활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심리전공 외 플랜 B가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결과적으로는 나는 대학원을 고민하는 학생들이 했던 일반적인 결정과 반대인 패션관련 전공을 선택했다. 학부 3학년 1년 동안 교내 패션학회를 정말 열심히 했다. 주 4일동안은 무조건 오전, 오후 동안 수업 듣고, 과제하고, 저녁 먹고 7시부터 보통 11시반까지 학회 활동을 했다. 밤 새는 날도 있었고, 통학 왕복 2시간 30분을 추가하니 매우 지치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대학원과는 아예 거리가 먼 예비 취준생(취업준비생)으로서의 준비를 하나씩 해 나아갔다.

그런데 패션학회를 하면서 나는 패션업계와 이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학회는 매주 팀별 활동으로 돌아갔는데 마치 예비 회사생활과 같은 인간관계 현장이었다. 내가 만난 사람들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학회 사람들이나 패션 업계에 취직한 선배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보니 옷이나 액세서리에 대해 관심이 우선적으로 정말 컸고, 그러한 관심은 곧 소비행동으로 이어졌다. 대학생이 가장 겁 없어 소비할 수 있을 때 여서 그런지 알바를 하면서도 고급브랜드를 사거나, 그러지 않더라도 다양한 아이템들을 정말 많이 소비했다. 그러한 관심-소비패턴이 그들의 일상을 크게 지배하는 무엇이 된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도, 살수도 없었다. 옷이 뭐 그리 대순지, 외적인 모습이 뭐 그리 인생에서 중요할까 라는 생각이었다. 


패션에 대한 회의감을 가지고 있었던 중에, 우연한 기회로 미국 패션관련 회사에서 잠시 인턴을 하게 되었다. 이 기간 동안의 경험이 진로결정에 또 한 번 큰 전환점이 되었다. 패션업계 사람들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할 것 없이 비슷했다. 그들과 같은 업계에서 열심히 일하다 보면 나도 그들의 모습과 언젠가 닮아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모습이 나에게는 전혀 멋있게 느껴지진 않았다. 결정적으로는 인턴하면서 만난 임상심리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지인을 만났는데, 그 분의 삶이 더 멋있어 보였다. 본인은 피곤과 무료감에 힘들어 했지만, 그래도 멋있어 보였다. 패션에 진심인 사람도 누군가에게는 멋있겠지만, 나는 사람의 변화를 만들어 내고, 그것을 위해 공부하는 사람들이 더 멋있는 것 같다.



한국에 돌아와서 4학년 학기를 시작하면서부터, 그제서야 대학원 진학에 필요한 준비물이 무엇인지 하나씩 알아가게 되었다.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이미 대학교 1,2학년 때부터 대학원 진학을 희망하며 학점, 연구실에서 RA경험 등을 하나씩 준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 알았으니, 나도 준비를 해볼까? 했던 용기가 생각보다 많은 것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은 생각에 좌절되기도 했다. 졸업준비, 학점, 희망 대학, 희망 연구실 선택, 희망하는 연구실에서의 연구 보조 경험, 교수님과 의사소통, 관심연구 분야, 영어성적 등 결정하고 만들어 내야 할 것들이 많았다. 그 외에도 대학 졸업 후 2년동안은 가난한 대학원생으로 살면서 등록금 및 생활비를 해결해야 하는 현실에, 부모님께 진로에 대해 상의했을 때 처음에는 긍정적인 지지를 받기도 어려웠다. 잘 될까 하는 걱정도 많았지만, 어찌어찌 하다 보니, 그리고 또 정말 간절하기만 하면 뭐든지 되는 것 같긴 하다. 뭐든지 진짜 하고 싶으면 선택하고 일단 시작해 보는게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무사히 졸업하고 대학원을 합격했다. 기간은 남들보다 한 학기 더 걸렸지만, 멀리 보면 한 학기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내가 해야 하는 것들을 해 나아간 결과였다. 대학원 준비를 위해 RA를 하는 동안, 당시 연구실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대충은 알았으나, RA생활과 실제 현실이 또 얼마나 다를지에 대해서는 감을 잡지도 못했다. 3년 전의 나는 큰 그림을 그리는 능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 대학원은 기본적으로 대학생활과 매우 다른데, 어떤 연구실에 있는가에 따라서도 대학원 경험은 크게 달라질 수 있긴 하다. 내가 들어간 곳은 다음과 같은 스케줄로 돌아갔다. 10-6 정시 출근(출근은 정시, 퇴근 시간은 보장 없음), 5평 남짓한 곳에 6명이 같은 연구실을 사용하기, 개인 혹은 2-3명이 팀별로 한 개 또는 2개의 연구프로젝트 진행, 졸업 전 논문 2개 작성, 9월 학기 시작 전 8월부터 아동센터에서 치료 실습보조 시작하여 9월까지 진행, 그 외에 연구실 잡무 등…이외에도 나열할 것이 더 있다. 더 무서운 것은 아직 대학원 수업, 과제, 수업내 팀별 활동, 조교 등은 일정에 넣지도 않았다는 것!



10시부터 6시까지 개인적인 공부나, 과제를 위해 논문을 보거나 다른 개인적인 일을 하는 것이 거의 허락되지 않았다. 회사원처럼 프로젝트 일만 해야 했고, 이러한 것들은 교수가 던진 미친 업무량과 그걸 버텨서 3,4학기가 된 젊은 꼰대 선배들의 군기잡기 역할, 또 실제로도 연구업무가 너무 많아서 내 공부는 뒷전이 되는 상황 등이 함께 만들어낸 현실이었다. 나는 2-3인조 연구팀프로젝트를 담당하는 파트에 있었는데, 대학생때의 팀플을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일단 일의 양이 매우 많고, 내가 잘 못하면 내 일이 동기나 위 선배에게 흘러갈 수밖에 없고, 그렇게 흘러간 결과는 심한 위축감, 좌절감, 우울감으로 돌아온다. 팀플처럼 한 두 번 보고 안 볼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연구실 생활에서의 이미지는 매우 중요한데 그리고 그 이미지는 나의 업무능력, 학업능력, 대인관계 스킬의 3콤보가 잘 이루어져야 했다.


대학원에서 경험한 2년 반 동안의 시간을 한 문단으로 정리할 수 밖에 없지만, 그 안에는 정말 다양한 사건 사고, 눈물의 논문 쓰기, 대인관계 고통, 경쟁, 학업의 어려움 등이 녹아 있다. 부디 대학원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 글이나 다른 대학원 후기 글들을 많이 참고했으면 좋겠다. 지피지기여도 100전100승은 못하는 것이 현실 다반사이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2년 혹은 2년 반 동안 지낼 곳에 대한 사전준비는 꼭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본인이 덜 고통받고, 예상한 것 보다 고통이 크더라도 큰 그림을 그릴때의 목표를 생각하며 다잡을 수 있다. 대학원 중도포기는 생각보다 많다. 연구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그 만큼 정신적, 육체적인 어려움이 큰 곳이기 때문이다. 나의 짧은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더 깊은 후기를 원하는 후배는 언제든 웰컴. 함께 성장합시다.

대학생에서 대학원생으로서의

진화과정


기자 HSU

4년제 대학에서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나서 진로에 대한 방황을 거의 2년간 한 후 대학원에 진학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대학원에 대한 사전조사를 거의 하지 않은 상태로, 심지어는 대학원에 다니는 선배들에게 조언도 듣지 못한 채로 대학원을 덜컥 가게 되었다. 사실 대학원은 보통 학점이 좋은 사람들이 가는 게 일반적이긴 하다. 학점이 좋다는 것은 학부시절부터 다른 사람들이 놀 때 나름의 고민을 가지고 학점을 열심히 챙기고 연구보조(Research Assistant)에도 기웃기웃 해가면서 대학원 진학을 고민해본 사람들이 보통 대학원을 가는 것 같다. 나는 그런 전형적인 학생은 아니었기 때문에 대학원 진학에 큰 두려움이 있었다. 


학부 1,2학년을 보내면서 심리학 수업 과목자체에 흥미를 느끼기 보다, 나는 취업을 미리 걱정하면서 심리학이라는 전공이 취업시장에서 얼마나 경쟁력이 있는지에 더 관심이 생겼었다. 당시에는 빨리 졸업해서 취업하고 안정적인 경제생활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심리전공 외 플랜 B가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결과적으로는 나는 대학원을 고민하는 학생들이 했던 일반적인 결정과 반대인 패션관련 전공을 선택했다. 학부 3학년 1년 동안 교내 패션학회를 정말 열심히 했다. 주 4일동안은 무조건 오전, 오후 동안 수업 듣고, 과제하고, 저녁 먹고 7시부터 보통 11시반까지 학회 활동을 했다. 밤 새는 날도 있었고, 통학 왕복 2시간 30분을 추가하니 매우 지치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대학원과는 아예 거리가 먼 예비 취준생(취업준비생)으로서의 준비를 하나씩 해 나아갔다.


그런데 패션학회를 하면서 나는 패션업계와 이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학회는 매주 팀별 활동으로 돌아갔는데 마치 예비 회사생활과 같은 인간관계 현장이었다. 내가 만난 사람들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학회 사람들이나 패션 업계에 취직한 선배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보니 옷이나 액세서리에 대해 관심이 우선적으로 정말 컸고, 그러한 관심은 곧 소비행동으로 이어졌다. 대학생이 가장 겁 없어 소비할 수 있을 때 여서 그런지 알바를 하면서도 고급브랜드를 사거나, 그러지 않더라도 다양한 아이템들을 정말 많이 소비했다. 그러한 관심-소비패턴이 그들의 일상을 크게 지배하는 무엇이 된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도, 살수도 없었다. 옷이 뭐 그리 대순지, 외적인 모습이 뭐 그리 인생에서 중요할까 라는 생각이었다. 


패션에 대한 회의감을 가지고 있었던 중에, 우연한 기회로 미국 패션관련 회사에서 잠시 인턴을 하게 되었다. 이 기간 동안의 경험이 진로결정에 또 한 번 큰 전환점이 되었다. 패션업계 사람들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할 것 없이 비슷했다. 그들과 같은 업계에서 열심히 일하다 보면 나도 그들의 모습과 언젠가 닮아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모습이 나에게는 전혀 멋있게 느껴지진 않았다. 결정적으로는 인턴하면서 만난 임상심리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지인을 만났는데, 그 분의 삶이 더 멋있어 보였다. 본인은 피곤과 무료감에 힘들어 했지만, 그래도 멋있어 보였다. 패션에 진심인 사람도 누군가에게는 멋있겠지만, 나는 사람의 변화를 만들어 내고, 그것을 위해 공부하는 사람들이 더 멋있는 것 같다.



한국에 돌아와서 4학년 학기를 시작하면서부터, 그제서야 대학원 진학에 필요한 준비물이 무엇인지 하나씩 알아가게 되었다.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이미 대학교 1,2학년 때부터 대학원 진학을 희망하며 학점, 연구실에서 RA경험 등을 하나씩 준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 알았으니, 나도 준비를 해볼까? 했던 용기가 생각보다 많은 것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은 생각에 좌절되기도 했다. 졸업준비, 학점, 희망 대학, 희망 연구실 선택, 희망하는 연구실에서의 연구 보조 경험, 교수님과 의사소통, 관심연구 분야, 영어성적 등 결정하고 만들어 내야 할 것들이 많았다. 그 외에도 대학 졸업 후 2년동안은 가난한 대학원생으로 살면서 등록금 및 생활비를 해결해야 하는 현실에, 부모님께 진로에 대해 상의했을 때 처음에는 긍정적인 지지를 받기도 어려웠다. 잘 될까 하는 걱정도 많았지만, 어찌어찌 하다 보니, 그리고 또 정말 간절하기만 하면 뭐든지 되는 것 같긴 하다. 뭐든지 진짜 하고 싶으면 선택하고 일단 시작해 보는게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무사히 졸업하고 대학원을 합격했다. 기간은 남들보다 한 학기 더 걸렸지만, 멀리 보면 한 학기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내가 해야 하는 것들을 해 나아간 결과였다. 대학원 준비를 위해 RA를 하는 동안, 당시 연구실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대충은 알았으나, RA생활과 실제 현실이 또 얼마나 다를지에 대해서는 감을 잡지도 못했다. 3년 전의 나는 큰 그림을 그리는 능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 대학원은 기본적으로 대학생활과 매우 다른데, 어떤 연구실에 있는가에 따라서도 대학원 경험은 크게 달라질 수 있긴 하다. 내가 들어간 곳은 다음과 같은 스케줄로 돌아갔다. 10-6 정시 출근(출근은 정시, 퇴근 시간은 보장 없음), 5평 남짓한 곳에 6명이 같은 연구실을 사용하기, 개인 혹은 2-3명이 팀별로 한 개 또는 2개의 연구프로젝트 진행, 졸업 전 논문 2개 작성, 9월 학기 시작 전 8월부터 아동센터에서 치료 실습보조 시작하여 9월까지 진행, 그 외에 연구실 잡무 등…이외에도 나열할 것이 더 있다. 더 무서운 것은 아직 대학원 수업, 과제, 수업내 팀별 활동, 조교 등은 일정에 넣지도 않았다는 것!



10시부터 6시까지 개인적인 공부나, 과제를 위해 논문을 보거나 다른 개인적인 일을 하는 것이 거의 허락되지 않았다. 회사원처럼 프로젝트 일만 해야 했고, 이러한 것들은 교수가 던진 미친 업무량과 그걸 버텨서 3,4학기가 된 젊은 꼰대 선배들의 군기잡기 역할, 또 실제로도 연구업무가 너무 많아서 내 공부는 뒷전이 되는 상황 등이 함께 만들어낸 현실이었다. 나는 2-3인조 연구팀프로젝트를 담당하는 파트에 있었는데, 대학생때의 팀플을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일단 일의 양이 매우 많고, 내가 잘 못하면 내 일이 동기나 위 선배에게 흘러갈 수밖에 없고, 그렇게 흘러간 결과는 심한 위축감, 좌절감, 우울감으로 돌아온다. 팀플처럼 한 두 번 보고 안 볼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연구실 생활에서의 이미지는 매우 중요한데 그리고 그 이미지는 나의 업무능력, 학업능력, 대인관계 스킬의 3콤보가 잘 이루어져야 했다.


대학원에서 경험한 2년 반 동안의 시간을 한 문단으로 정리할 수 밖에 없지만, 그 안에는 정말 다양한 사건 사고, 눈물의 논문 쓰기, 대인관계 고통, 경쟁, 학업의 어려움 등이 녹아 있다. 부디 대학원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 글이나 다른 대학원 후기 글들을 많이 참고했으면 좋겠다. 지피지기여도 100전100승은 못하는 것이 현실 다반사이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2년 혹은 2년 반 동안 지낼 곳에 대한 사전준비는 꼭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본인이 덜 고통받고, 예상한 것 보다 고통이 크더라도 큰 그림을 그릴때의 목표를 생각하며 다잡을 수 있다. 대학원 중도포기는 생각보다 많다. 연구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그 만큼 정신적, 육체적인 어려움이 큰 곳이기 때문이다. 나의 짧은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더 깊은 후기를 원하는 후배는 언제든 웰컴. 함께 성장합시다.


CONTACT

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서로 159-1 CBS방송국 14층

T. 02 - 2649 - 0206    E.  info@woorion.org

GET IT TOUCH 

구독해 주시면 새로운 소식을 보내드립니다.

Copyright © WOORION. All rights reserved.

CONTACT

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서로 159-1 CBS방송국 14층

사단법인 통일의 징검다리 우리온 대표 : 박대현 

사업자등록번호 : 678-82-00212

T. 02 - 2649 - 0206

E. info@woorion.org

GET IT TOUCH

구독해 주시면 새로운 소식을 보내드립니다.


         Copyright © WOORION. All rights reserved.